어쩌다 저녁 자리에서 퇴임 경제 관료들 평가회가 열렸다. 누군가 누구를 추켜세우면, 누군가 그 누구를 깎아내리고 왁자했다. 누가 최악이었느냐가 화제가 됐는데 한 전직 장관이 마침표를 찍었다. “누구 누구 해도 지금 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다들 100배는 낫다.” 장관들이 ‘장관 값’을 못한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정치인 출신 일부 장관은 폭주하고, 관료나 학자 출신은 고개만 조아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장관이 되면 저마다 공들인 취임사를 발표한다. 그 각오와 결기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유은혜 교육부장관,김현미 국토부장관,추미애 법무부 장관,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조선일보 DB

하루 사표로 ‘쇼했다’는 말까지 듣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국민은) 소득, 고용, 분배 개선 등 경제 활력을 확 높여 달라, 팍팍한 개인의 삶이 더 나아지게 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감을 걷어달라고 한다”고 했다. “경제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루빨리 민간에서 경제 하려는 동기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직원 50~299명 중소기업까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데 아직도 보완책은 도입되지 않고 있다.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하고, 부동산 세금 폭탄, 전세 대란까지 막이 올랐다. 도전과 혁신, 경제를 살린다는 엔진은 어디 있나?

사회부총리인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대한민국 첫 여성 부총리라는 중책을 맡았다. 국민의 삶을 희망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국어고, 자사고 폐지만 기억난다.

좌충우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취임사는 이랬다. “저는 실추된 법무부의 위상을 여러분과 함께 드높이고자 합니다.” 수사지휘권 휘두르면서 검찰총장과 싸우느라 더 실추됐다는 말이 나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향후 50년 포용적 복지국가의 근간을 닦고 싶다”고 했다. 세금 퍼붓는 현찰 박치기 복지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마 본인도 알 것이다. 코로나 초기 “문 열어놓고 모기 잡는다”는 지적을 받자 “겨울이라 모기가 별로 없다”고 했다. 독감 백신 사태 때도 본인이 백신 맞는 모습 공개한 것 말고 무슨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동산과 전쟁’이라도 벌이겠다고 자신만만한 취임사를 냈다. 지금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나. 성추행 사건으로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해야 하는데 “국민 전체가 성(性) 인지에 대해 집단 학습할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의 취임사는 이렇다. “좀 더 많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 평등 문화 확산과 사회 발전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지금 보면 장관들의 취임사는 잠꼬대처럼 들린다.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문고 줄을 풀어서 다시 고쳐 매는 것처럼 심기일전 일하겠다고 한 장관은 부끄러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관가(官街)에 “취임사의 유통기한은 취임식 당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매일 취임사를 쓰는 자세로 일하면 어떨까.

그도 아니라면 고대 그리스의 현자(賢者) 필론을 따라 하면 어떨까. 하루는 필론이 배를 타고 여행하다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하면서 배는 아수라장이 됐다. 필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갑판 밑 짐칸에서 돼지 한 마리가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턱없이 분란 만들고, 엉뚱한 정책으로 시장 휘젓지 말고 좀 조용히 주무시는 것도 한 방법이라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