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해에서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소각한 지 오늘로 56일이 지났다. 현 정권은 이 사건을 거론하는 걸 싫어한다. 사건은 서서히 잊힐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국가와 대통령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세월호 7시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쉽게 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하는 해경. /인천해양경찰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공무원이 실종된 지난 9월 22일 오후 6시 30분 첫 서면 보고를 받았다. 총격, 시신 훼손이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적극 대응했다면 상황 악화를 막을 수도 있었다.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군은 그날 밤 10시 30분 총격·시신 훼손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튿날 새벽 1시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처참한 죽음은 그날 오전 8시 30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국민이 죽었는데 참모들은 대통령을 깨우지 않았고, 대통령은 그냥 잠을 잤다.

여권 인사들은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측근인 윤건영 의원은 방송에 나와 “새벽에 (이 사건을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라는 게 굉장히 제한적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럴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국가는 국민 생명·안전에 무한 책임이 있고, 대통령은 국가 독립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책무다. 뭔가 노력이라도 한 것과 그냥 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오죽했으면 공무원 아들이 “나라는 뭘 했나”라고 물었겠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0월 24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09년 4월 유럽을 순방 중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한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새벽 4시 30분(현지 시각) 잠자는 대통령을 깨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사실을 알렸다. 오바마는 바로 일어나 백악관 참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책을 지휘했다. 이게 정상적인 국가이고 대통령 아닌가. 먼 나라에서 로켓을 쏜 것과 국민이 코앞에서 총살당한 것 중 어느 게 더 긴박하고 무거운 일인가.

우리 정부는 한술 더 떠서 그 국민을 월북자로 몰았고, 극렬 여당 지지층은 ‘월북이 자랑이냐’고 유족에게 악플 공격까지 했다. 피살 공무원의 형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만행이 더 끔찍하다”고 절규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이슬람 테러로 프랑스인들이 참수당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프랑스가 공격당했다.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수당한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파리의 한 광장에 1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였을 때 장 카스텍스 총리와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나란히 앉았다. 야당 소속인 이달고는 평소 마크롱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치던 사이다. 테러에 대한 분노로 연대한 것이다. 공격당한 국가와 국민, 대통령이 해야 할 말과 행동은 이런 것 아닌가.

종전선언을 원하는 문 대통령은 사건 직후 북한 책임을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충성파 여당 의원들이 방어막을 치는 가운데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마크롱과 문 대통령 말 중 어느 게 정상인가. 적어도 “다시는 북한이 그런 짓 못 하게 하겠다”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 정권과 여당은 이 사건이 빨리 잊히기만을 바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