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이나 핵폭탄이나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기는 매한가지다. 우라늄은 핵이 중성자를 흡수했을 때 터지는 우라늄 235와 터지지 않는 우라늄 238로 나뉘는데 자연 상태 우라늄에는 235가 0.7%밖에 없다. 나머지는 238이다. 원자력발전을 하려면 우라늄 235를 농축해 비율을 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핵폭탄은 90%다. 농축 차이에 따라 우라늄은 전기가 되기도 하고 폭탄이 되기도 한다. 원전과 핵폭탄은 그래서 ‘선악(善惡)의 쌍생아’다. 농축해 터뜨리는 것보다 제어해 전기를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 미국은 우라늄을 농축해 실험도 안 해보고 히로시마에서 터뜨렸지만, 원전으로 상업용 전기를 만드는 일은 폭탄이 터지고 10년 뒤에나 가능했다.
한반도 남북에 우라늄 복음이 전해진 시기는 비슷했다. 미국의 시슬러가 이승만을 만나 원전을 조언한 게 1956년이다.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짜리 나라가 38만달러를 들여 연구형 원자로를 들여왔다. 비슷한 시기 김일성은 소련의 첫 원전 오브닌스크 기공식에 초대받았다. 실험용 원자로를 도입하고 소련에 유학생도 보냈다. 우라늄으로 전기를 만들고 폭탄을 만드는 일이 남북 모두에게 백일몽 같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들어 핵폭탄을 가진 5대 강국을 제외한 나라들에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두 가지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남의 지도자는 전기를 택했고 북은 폭탄을 택했다. 박정희는 600메가와트짜리 상업용 원전 건설에 뛰어들었다. 그는 1978년 고리 1호기 준공식에서 “2000년엔 8만메가와트 시대”를 예언했다. 지금 대한민국 발전설비가 12만메가와트니 그의 예언은 얼추 맞아들었다. 김일성이 핵폭탄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1980년대 초로 추정된다. 세습왕조 체제를 지키려는 선택이었다. 영변의 연구용 원자로는 상업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핵폭탄 연료를 만드는 생산 기지가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백톤 쇳덩이를 다뤄 원자로를 만들어내 수출까지 한다. 안정된 전기 공급이 있어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이 가능했다. 해방 직후 한반도 전기의 90%를 생산하던 북한은 지금은 대한민국 전기의 20분의 1도 못 만들어낸다. 전체 발전설비가 고작 8000메가와트다. 암흑의 북한과 불 밝힌 대한민국은 수치 너머 선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전기 대신 핵폭탄 60기를 움켜쥔 북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 수십년 전 남북 지도자의 선택이 있었고 우리는 그 결과 위에 살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산업부 공무원들이 북한에 원전을 짓는 방안을 문건으로 만들었다. 문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작 중단된 신한울 3·4호 원자로(APR1400)를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건설.’ APR1400원자로는 우리가 개발해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대한민국 원전 역사의 결정체다. 이걸 북한에 가져가 원전을 지어주자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의 대한민국이 준 혜택을 받고 자라나 김일성, 김정일의 북한을 추앙해온 이들이 1980년대 대학가의 주사파다. 그들은 얕은 지식과 깊은 오만으로 대한민국 탄생을 부정하고 성장 과정을 경멸했다. 586이 된 지금도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정권 핵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원전을 북한에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그들 머리 언저리에서 나왔다. 비핵화만 이뤄진다면 대북 원전 지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586은 북에 원전을 주는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한반도 위에 펼쳐졌던 원전·핵폭탄 쌍생아의 60년 역사를 되짚어봤으면 좋겠다. 선악의 쌍생아와도 같은 남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단죄하려 말고 역사 앞에 겸손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