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5:5로 성비를 맞추던 비례대표 공천을 7:3이나 8:2로 맞추자”고 한 건 놀랍게도, 이준석 대표였다.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약하며 쓴 ‘어린 놈이 정치를?’이란 책에서 그랬다. 스물일곱 패기로 넘치던 이 청년은 국내 모 증권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때 부익부 빈익빈의 불합리성을 채용 과정에서부터 절감했다고도 썼다. “하버드 출신이란 이유로 면접도 보지 않고 채용”됐다는 그는, “비상위권 대학이나 지방대 학생들은 인턴 기회조차도 얻을 수 없는 현실”에 함께 분노했다.

그로부터 7년 뒤, 중견 정치인이 된 이준석이 쓴 책 ‘공정한 경쟁’은 결이 사뭇 다르다. “여성 비례대표 50% 할당제는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그는, “여가부는 이익 집단”이 됐고,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은 태극기 부대와 비슷하다. 나치와도 다르지 않다”고 비난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할당제에도 반대한다. 대신 “능력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는 엘리트주의를 설파한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한 한 가지는, 낙선을 거듭해온 0선(選) 정치인이 ‘블루오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대남의 분노’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8년 미투, 2019년 n번방에 분노하며 결집한 20대 여성들이 장혜영·류호정 같은 의원들을 배출하며 정치 세력화로 나아갈 때, 20대 남성들은 남초 커뮤니티에 모여 울분과 욕설을 내뱉었을 뿐이다. 남자란 이유로 우대받은 적 없고, 공부 잘하고 리더십 뛰어난 여학생들을 ‘회장’으로 모셨으며, 피자는 더 많이 먹는데 데이트 비용은 반만 낸다고 구박받으면서도 군대까지 성실히 다녀왔건만, ‘잠재적 가해자’라 하니 분노가 솟구칠 만하다.

이때 “난 너희 편!”이라 외치고 나선 게 이준석이다. 그 분노를 호랑이 등 삼아 제1 야당 대표에도 올랐다. 뜻한 바를 이뤘으면 ‘갈라치기'도 멈춰야 하는데 일자리 부족, 치솟는 집값 등 20대 남성들의 고통이 여성과 할당제 탓이라는 ‘빗나간 분노'를 그는 방관한다. 여성 취업률과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최하위 수준이고, 코로나로 직장 잃은 남성이 3만명, 여성은 10만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연일 나오는데도 “여자라 차별받은 적 있느냐?”는 말만 되풀이한다.

지난주 ‘아무튼, 주말'이 소개한 36세 AI 석학 조경현 뉴욕대 교수는 이준석 대표와 동갑이자 카이스트 출신 공학도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인식과 해법은 전혀 다르다. 그는 여성 공학도들이 출산과 육아로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상금과 강의료를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AI 분야에 여성 연구자가 부족하면 데이터의 편향과 오판을 증폭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은 “우연과 운 덕분”이라고도 했다. 과학고-하버드-청년 대표로 이어져온 자신의 스펙이 오로지 ‘노력과 실력 덕분'이라는 이준석 대표와 대조적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필사적으로 준수하려는 건, 여성과 유색인종을 동정해서가 아니다. 백인·남성·엘리트들만 있어서는 조직의 창의가 말살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치명적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적과 능력으로 줄을 세우겠다는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은 20% 엘리트들에게만 해당한다. 경기장에 진입할 수조차 없는 나머지 80%는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다. 2030 여성들은 그래서 국민의힘을 ‘보이콧’했다. ‘나는 국대다’ 토론 배틀에 지원한 564명 중 여성은 63명뿐이었다.

이념 정치, 계파 정치 타파엔 박수를 보낸다. 90도 ‘폴더 인사’도 신선했다. 그러나 표를 위해 남녀 갈등을 부추기진 말아달라. 당장 추미애씨가 “페미에 반대한다”며 숟가락을 얹지 않던가.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펼친 ‘10가지 고명이 어우러진 비빔밥’론이 정답이다. 공정만큼 공존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