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연금 개혁은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연금 개혁이라고 하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공무원 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도입 당시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내는 돈 대비 받는 돈이 많게 설계해 놓아 계속 고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연금 관련법들이 모두 5년마다 재정 계산을 하도록 한 것도 그 주기로 제도 개선을 하라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담스러운 일을 누가 앞장 서 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다 했다.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추세인데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YS는 1995년 1차 공무원 연금 개혁을 했고, DJ는 1998년 1차 국민연금 개혁과 2000년 2차 공무원 연금 개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2차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수정 폭이 좁아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떻든 3차 공무원연금 개혁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공무원 노조 등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더 내고 덜 받는 4차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과감하게 국민연금 개혁을 한 것이 눈에 띄는 점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공무원 연금도 국민연금도 손대지 않고 있다. 연금 개혁만큼 현 정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인기 없는 일, 귀찮은 일, 반발이 있을 것 같은 일은 손대지 않고 아무리 촉구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현 정권은 김영삼 정권 이후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첫 정권으로 남을 전망이다. 국민연금기금이 2041년 정점을 찍고 적자로 돌어서 2057년 소진할 전망이라는 점, 공무원 연금은 정부 지원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해 2조6000억원(2019년 기준)에 이른다는 점 등을 들어도 별 느낌이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2018년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4가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아 지금과 같은 표류의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제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지쳐 포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민의힘 유승민·윤희숙 의원 정도가 국민연금 개혁을 주장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말인 지금이 오히려 국민연금을 손댈 적기라는 의견도 있고 상당히 설득력도 있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정권 초기에는 할 일도 많고 지지율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연금 개혁 같은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임기 말엔 굳이 지지율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데 최적의 시기라는 얘기다. 국민연금 개혁 방안은 이미 수년의 논의 끝에 보험료는 좀 올리고 급여 수준을 올리느냐 마느냐 등으로 좁혀져 있다. 연구·분석도 충분히 해놓아 결단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금 전문가인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내년 2월까지로 잡더라도 6개월 남아 있는데, 6개월이면 충분한 시간”이라며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 연금 개혁을 해냈다”고 말했다.
더구나 국회에서 범여권 의석이 180석 안팎이어서 여권이 결단만 하면 얼마든지 법 개정이 가능한 구조다. 사실 야당은 정부 여당이 국민연금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강행 처리할 필요도 전혀 없다. 대통령이 국민연금법 개정 의지를 밝히고 대략적인 방향만 제시하면 합의 처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