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대선 여론 조작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그날 묘한 말을 꺼냈다. 그는 “법원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 이상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면서도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했다. 언젠가 재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무죄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민주당 친문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판결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 김 지사의 결백을 확신한다”면서 “대법원이 눈감은 진실이 양심과 역사의 법정에서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드루킹과 공모해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2년 실형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입감 전 발언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6년 전 일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2015년 8월 친문(親文)의 대모(代母)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한 전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나는 무죄”라고 하자, 당시 야당 대표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 전 총리는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며 맞장구쳤다.

이때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는 말이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뒤집겠다는 뜻이라고 간파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상상하기 힘든 법치 훼손이 실제로 벌어졌다. 여권은 작년 총선에서 압승한 뒤 ‘한명숙 무죄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팀이 증인들에게 위증을 강요해 죄가 없는 한 전 총리를 유죄로 만들었다고 했다. 법무장관이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조사하게 했지만 ‘사실무근’ 결론이 나왔다. 후임 법무장관도 “재검토하라”며 검찰을 몰아세웠다. 정권 불법 혐의를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낸 뒤 검찰 재조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위증 강요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위법 수사에 의한 유죄 판결은 무효라는 법적 주장은 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한 전 총리는 자서전을 내고 “난 결백하다, 그것은 진실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정치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하려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 전 총리는 본인이 업자에게서 받은 수표를 동생이 전세 자금으로 쓴 사실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됐다. 김 전 지사도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에 유리한 댓글 68만개를 4133만회 조작한 물증이 나왔다. 대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면 자신이 무죄라는 증거를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런 증거가 없다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문 정권이 말하는 역사와 양심의 법정은 사건으로 차고 넘칠 가능성이 크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이 법정의 문 앞에 와 있는 듯하다.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는 딸 입시 비리, 불법 사모펀드 투자 등 혐의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입시 비리는 모두 유죄가 됐고 서울대 인턴 확인서 위조는 부부 공범으로 인정됐다. 대법원 확정 판결만 남았다. 조 전 장관은 불법 사모펀드 투자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이 일부 무죄를 선고한 부분만 언급하고 있다. 유죄 부분을 반박하거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는 전혀 내놓지 못했다. 한 전 총리와 닮은 꼴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김학의씨 불법 출국 금지 등도 언젠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 등장할 것이다. 문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했거나 청와대 핵심 참모, 정부 장관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있는 정권 불법이다. 주범들이 유죄를 받는다면 어떤 변명과 궤변으로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강변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