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 1992년 1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1989년 한국을 찾은 지 3년 만이었다. 그사이에 청와대가 크게 바뀌었다. 현재의 궁궐 같은 본관과 아늑한 관저가 완공됐다.
노태우는 두 번째로 청와대를 방문한 부시 부부의 가이드가 됐다. 새 본관과 관저를 구경시켜줬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부시는 완전히 달라진 청와대 모습에 깜짝 놀랐다. “(부시 대통령 부부) 두 사람은 관저에서 자아내는 전통미와 추녀의 곡선미에 홀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부시가 청와대를 모두 돌아본 후 제안할 것이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백악관을 맞바꾸자”고 조크했다.
비좁고, 일반인이 훤히 들여다보는 백악관에서 생활하다가 모든 것이 차단된 채 정원에서 사슴까지 키우는 청와대가 부러웠던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사(史)에 기록된 일화는 청와대가 얼마나 화려하고, 안락하게 단장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청와대가 한국에선 국민과 불통(不通)의 거대한 상징물이 된 것을 안다면 부시는 아마도 생전에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엔 비서실장이 대면 보고를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주(週)가 있을 정도로 혼자 관저에 틀어박혔다.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국가안보실 긴급보고서를 소지한 행정관들이 자전거를 타고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랬으니 국민과의 소통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에 전임자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며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2017년 12분짜리 대통령 취임사에서 4분이 지날 때부터 청와대 문제를 언급했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최악의 거짓말 잔치로 끝나고 있는데 이 문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청와대 내 여민관에 집무실을 만들었지만, 소통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누가 있나. 최근엔 기자회견도 하지 않아 여전히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알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의 실패는 광화문 시대 공약을 파기한 2019년 1월 22일부터 본격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장황하게 변명했지만, 사실은 외부와 단절돼 편안한 청와대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당시 자신의 공약을 무효화하는 이유로 리모델링 비용을 들었다. 청와대 관저와 헬기장, 의전 공간은 그대로 사용하며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로 출퇴근하면 되는데 무슨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든다는 것인가.
그의 청와대 집무실 이전 언급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나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기에 청와대 시스템 변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전 시 과제를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다. 알고도 그랬다면 명백한 ‘공약 사기’다. 결과적으로 그 후 국민과의 만남, 기자들과의 소통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나.
백악관은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와 부통령실이 불과 3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통령이 정부청사로 나오면 언제든 미국처럼 1분 이내에 총리와 만나 국가 대사를 논의할 수도 있다. 의원 기숙사에서 살며 매일 출퇴근 길에 기자들을 만나는 일본의 총리처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경호와 의전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정부청사와 경복궁 사이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지하도가 개설돼 있어 유사시 이동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광활하기 이를 데 없는 청와대는 미국의 블레어 하우스처럼 국빈이 투숙할 수 있는 시설로 일부 개조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까지는 앞으로 4개월가량 남아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積弊) 청산을 위해서도 청와대 집무실 이전 문제가 여야 대통령 후보들 사이에 깊이 있게 논의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