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일 경기도 평택 박애병원 집중치료실(ICU)에서 한 의료진이 코로나 감염병 환자를 체크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이 통화가 끝나면 아버님, 어머님과 바로 영상 통화 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코로나 환자의 폐 기능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를 돌보던 의사가 환자 자녀들에게 한 말이다. 환자 아내는 다른 병원 코로나 격리실에서 치료 중이고, 자녀들은 집에 격리돼 가족이 생이별 중이다. 그 의사는 “지금이 부모님 얼굴을 전화로라도 마주하고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일지 몰라요”라며 “죄송하다”고 한 것이다. 그의 죄책감은 무엇일까. 가족의 영원한 이별을 속수무책 지켜봐야만 하는 ‘죄 아닌 죄’가 그를 짓눌렀을 것이다.

지난 주말을 우울하게 보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코로나 치료 의사들의 글과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절망감, 비통함에 감염돼 버렸다. 수도권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응급실에 300시간 가까이 체류한 지적장애 환자가 있었다. (코로나 병상으로 옮겨야 하지만) 치료 인력이 많이 필요한 기저 질환자라 어느 곳도 안 받아준다”고 썼다. “심정지 환자를 받아달라고 119에서 요청하지만 ‘수용 불가’ 통보할 때는 자꾸 마음이 꺼지는 것 같다. 의사로서 자괴감이 든다”고도 했다. 막막함, 황폐한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려는 사람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서도 살리려는 본능이 없다면 의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직업적 소명감조차 박탈당한 상태다.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 있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죽어갈 것이다. 두렵다”…. 의사들이 ‘우리도 사람이지 코로나 치료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 의료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몬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과 연말에도 병상 부족 사태로 의료진이 고초를 치렀다. 코로나 전투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급돼야 할 물자가 병상이다. 그런데 치명적 보급 실패를 두 번이나 겪고도 실패를 반복한 것이다. 코로나 최일선에 물자가 보급되지 않는 전투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병원과 의사들은 이제 패전 책임까지 덮어쓸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코로나19 환자 격리 해제 기준’이란 걸 발표했다. ‘코로나 중환자를 입원 20일 지나면 격리 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병상이 부족하니 일반 병실로 보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일 넘긴 코로나 치료비는 국가가 주지 않는다고 한다. 병원이 개인에게 청구하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갈등이 벌어지면 의료진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 베테랑 감염병 의사는 “면역 저하자는 (20일 아니라) 120일이 지나도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사례가 국내외에 보고돼 있다”고 했다. 병원 내 감염 확산 우려가 있는데, 정부가 대책은 마련 않고 무작정 코로나 중환자 병실을 옮기라고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명령만 내리고, 병원과 의사는 기계처럼 그걸 받아들이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앞으로도 계속될 코로나 전투에서 또 패배하지 않으려면 의료진을 이렇게 막 대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노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못 해도 그들을 인간 감정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은 가라앉히고 봐야 한다. 의사들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부터 만들어야 다음 전투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작년 초부터 위드 코로나 시작 직전인 올 10월 말까지 2858명이 코로나에 걸려 숨졌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채 두 달이 안 된 18일까지 사망자가 1864명이다. 어느 의사는 “이것은 그냥 숫자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이 말에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코로나 전투에서 영영 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