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명작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내로남불’ 영화다. 한국 정치를 다룬 게 아니다. 이웃에 살던 남녀는 각각 자기 배우자들의 외도를 의심하다 직접 만나 이를 확신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며 위로한다. 이들은 배우자들을 비난하며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 선을 긋는다. 그들처럼 되지 말자는 다짐이자,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선언이었다. 이들은 호텔에서 만나지만 그들과 다르게 소설을 함께 쓴다. 그러나 이들의 다짐은 시간과 함께 무력화된다. 다르다고 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내로남불’일 뿐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 ‘화양연화’의 시간은 벚꽃처럼 지고 만다.
한국 정치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선언했고, 자신이 만들 나라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울림이 컸다. 집권 직후부터 전(前) 정권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이어졌지만, 문 대통령이 지니고 다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는 처절한 복수가 아닌 ‘아름다운 복수’의 징표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 핵심 관계자는 최근 “우리는 다를 것이라는 다짐과 경계심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계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우린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만 남아 버렸다고 한다. ‘적폐청산’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혁명정권에서 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복수는 제대로 했는데 왜 ‘아름다운 복수’ 인지 아무도 설명 못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요 사안마다 뒤로 빠졌던 모습이 문 대통령에게 겹쳐졌다. 검수완박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보여준 처신도 비슷하다. ‘조국 사태’는 최서원씨 일가에 분노한 촛불이 무엇인지 회의를 들게 했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은 외신 헤드라인까지 장식했고, 윤석열 정권 탄생의 씨앗이 됐다. 이렇게 문재인 정권의 ‘화양연화’는 끝났다. 권력의 봄날은 갔다.
지금부턴 윤석열 당선인의 시간이다. 당선인은 지금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확신이 가득할 것이다. ‘조국 사태’는 없을 것이며 ‘상식과 공정’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 대한 자신감도 다르다. 첫 시험대가 인사(人事)였는데 벌써 ‘내로남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난 ‘능력과 인품’만 보고 골랐고 검증은 철저했는데 신상 털기와 세상의 야박한 평가가 야속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반면교사를 해보라.
문재인 정권 인사에서 “왜 저 사람일까” 의문이 들면 몇 가지 중 하나였다. 운동권 인맥, 참여연대 및 민변, 문 대통령과 잘 아는 ‘부산’ 또는 노무현 정권 때 인물. 윤 당선인 인사에서 물음표가 들면 검찰, 대형 로펌, MB 정권 사람, 동문, 몇 년 지기, 엘리트 관료 등 몇 가지 키워드를 찾으면 실마리가 풀렸다. 좋지 않은 신호다. 어느 정권이나 아는 사람을, 손발이 척척 맞는 사람을 쓰게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잔소리할 사람, 다양성과 통합의 그림에 맞는 사람도 두루 써야 한다. 탁현민식 쇼가 싫다면 윤석열다운 소통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아름다운 복수’ 같은 발상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게 좋다. 윤 당선인과 새 정부 사람들은 “우린 그들과 다르다”는 오만과 착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팽팽한 경계심, 그리고 팽팽함은 유리처럼 깨질 수 있다는 무거운 다짐으로 5년을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