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년 전 서울 마포에 횟집을 연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다가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 사건으로 사퇴한 뒤였다. 그는 언론에 “넥타이 매고 일하는 게 두려워 정직하게 몸으로 때우고 살자는 결심으로 음식점을 차렸다. 을(乙)의 입장에서 살아가면서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직시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뒤 그의 지인과 함께 필자가 횟집을 찾았을 때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고검장 출신인 소병철 민주당 의원은 2013년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뒤 고액 연봉이 보장된 대형 로펌을 마다하고 농협대학 석좌교수로 갔다. “법률 지식을 갖춘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되기 위한 ‘경력 관리’ 차원이었을 수 있으나 분명 보통의 검찰 고위 간부 출신들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밀어붙일 때 적어도 이 두 의원은 반대할 줄 알았다. 이 법안대로라면 검찰의 선거·공직자 범죄 수사권이 없어져 국회의원과 정권 고위직이 득을 본다. 또 이미 과부하가 걸려 있는 경찰 수사가 더 지연될 가능성이 커 평범한 국민들이 피해 구제를 받기가 더 어려워진다. 정상적인 법조인이라면 이런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없고, 두 사람 삶의 궤적으로 볼 때 그 정도 양심은 지킬 거라 생각했다. 검찰총장 후보로 여러 번 추천됐던 소 의원에게 검수완박이 소신일 리 없다. 그가 만약 총장이나 장관이 됐다면 찬성했겠나. 한때나마 “을의 입장에서 살아보겠다”고 했던 조 의원은 검수완박 사태 와중에 ‘범죄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안이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편지를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둘 다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만이 아니다. 검사장까지 지낸 김회재 민주당 의원은 검사 시절 대검 수사정책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강하게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경찰과 적절하게 타협하자”는 선배 검사를 ‘이완용’에 빗대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역시 찬성표를 던졌다. 어설픈 소신은 바뀔 수 있지만 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체득한 소신을 바꾸는 건 야합에 가깝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위해 편법적 사보임, 위장 탈당을 통한 안건조정위 무력화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74년간 유지돼온 형사 사법 제도의 골간을 바꾸는 법안을 6분 만에 본회의에서 졸속으로 통과시켰다. 법조인은 체질상 적법 절차에 민감한데 이들 세 의원은 이런 편법에도 눈감았다. ‘세월호’ ‘조국’ ‘사법 개혁’을 내세워 의원이 되고 나서 정파적 이유로 이 법안을 밀어붙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과 다를 게 없다. 주판알만 튀기는 정치인처럼 변질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2년 뒤 공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찬성표를 기대하고 법사위로 불러들인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법안 내용을 파악한 뒤 끝까지 찬성 쪽에 서지 않았다. 민주당 복당 신청을 낸 상황인데도 법사위에선 반대, 본회의에선 기권표를 행사했다. 삼성 임원 출신인 그는 “앞으로 정치를 안 하는 한이 있어도 양심에 따라 반대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비법조인이 지킨 양심 앞에서 법조인 출신 세 의원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회의원 자리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 횟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농협대학 강단에 섰던 이전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