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올해로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의대를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의사들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 17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우선 우리나라 인구는 2006년 4899만명에서 지난해 말 5173만명으로 6%쯤 증가했다. 특히 의료 수요가 많은 65세 이상 인구는 453만명에서 871만명으로 거의 2배로 늘어났다.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65세 이상 진료비 비율이 40%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의료 수요가 적어도 20~30%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OECD 보건통계 2022′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국내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4명)에 이어 둘째로 적었다. OECD 평균(3.7명)보다는 1.2명이나 적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0명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1분 진료, 3분 진료가 여전하고, 의료 인력의 지역 편차 문제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지난달 복지부가 내놓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의사 임금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5.2% 증가해 보건의료업종 중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2020년 기준으로 의사의 평균 임금은 2억3070만원이었다. 간호사는 4745만원이어서 의사가 간호사의 4.86배 벌고 있었다. 10년 전엔 이 격차가 4.2배였는데 더 벌어졌다. OECD 평균 의사와 간호사의 급여 비율은 2~2.5배 정도(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다. 우리나라 의사의 연봉 수준은 OECD 최상위권이다. 봉직의 연봉을 구매력평가환율(PPP)로 환산했을 때 연간 19만5463달러(2억5566만원)로, OECD 평균(10만8481달러)의 1.8배였다.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여러 이유를 대지만 의사가 많아지면 수입이 줄 것이라는 염려가 가장 크다고 한다. 증원 반대의 결과로 의사들 수입은 지난 10년간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간호사 등 다른 직종과 격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으니 의사들 의도대로 온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갈수록 커지는 격차를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상당수 의사들도 이 수치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라 믿는다.
보건의료의 중심은 당연히 의사들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으로 격무에 시달리며 국민 건강을 챙겨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주위 의사들을 보면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는 등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의사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의사 수를 늘려 격무를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워라밸 시대에 의사들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고되게 일할 이유가 없다. 의사 수를 늘리면서 업무 부담을 줄이면 의사와 다른 직종 간 수입 격차도 어느 정도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고령화에 따라 의료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국민들의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욕구도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오는 2035년 의사 인력이 최대 1만4631명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물론 증원만 아니라 지역별 배치 불균형 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가 조정 등 섬세한 정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의사들이 보건의료계의 큰형님답게, 의사 증원을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국민들은 의사들에게 이런 상식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