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26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5년이 된다. 임기 6년 중 5년이 갔으니 성적표를 매길 때가 됐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사법부를 위해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기억나는 건 거짓말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 있을까 싶어 그의 취임사를 읽어봤더니 그 역시 결과적으로 대부분 거짓말이 됐다.
그는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다. 이후 행동은 정반대였다. 지난 정권 때 법관 탄핵을 추진하는 여당에 잘 보이려고 여당이 탄핵 대상으로 지목한 후배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정권 눈치 보느라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짓밟은 것이다. 그래 놓고 작년 2월 대법원 명의로 그런 적 없다는 거짓 답변서까지 냈다.
법정에서 한 거짓말을 위증으로 단죄하는 판사는 이런 거짓말이 드러나면 자리를 지키기 어렵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국민 상대로 초유의 위증을 하고 아직도 버티고 있다. 지난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측근의 성 비위 전력을 알면서도 주요 당직에 앉히고 언론에 몰랐다고 거짓말했다가 결국 사퇴를 발표했다. 진실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야 할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이 총리의 거짓말보다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버티는 건 그가 뻔뻔하거나 우리 사회가 관대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좋은 재판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그리고 민변이 장악한 대법원은 ‘선거 TV 토론에서 한 거짓말은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지사직을 유지시켰다. 검찰이 항소장을 부실 기재했다는 지엽적인 이유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도 대법원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1심을 맡았던 우리법 출신 판사는 15개월간 본안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대학 건물에 붙였다가 건조물 침입이라는 황당한 혐의로 기소된 청년에게 1심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다. 이런 걸 ‘좋은 재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느 판사는 “너무 한심해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재임 5년간 전국 법원에서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그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탓이 크다. 승진 개념을 없애고 법원장도 인기투표로 뽑겠다는 마당에 어느 판사가 열심히 일하겠나. 판사들 ‘워라밸’은 좋아졌지만 재판 지연으로 국민 고통은 더 늘어났다. 신속한 재판과 공정한 재판은 헌법이 규정한 절차적 정의의 두 축이다. ‘좋은 재판’을 위한 필수 조건인데 김명수 사법부에선 둘 다 무너졌다.
그는 자신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과 이념적 성향이 같은 우리법·인권법 출신 판사들을 요직에 앉히고 권력 비리 재판에서 정권 측에 불리하게 판결한 판사들은 한직으로 보냈다. 사석에서 후배 판사에게 “너는 누구 편이냐”며 노골적 편 가르기를 하기도 했다. 그의 측근 판사들은 법복을 벗자마자 청와대 비서관이 됐고, 실체도 불분명한 전임 사법부의 ‘사법 농단’을 고발했다는 판사들은 당시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이건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 대한민국 사법사에 큰 오점을 남긴 그가 퇴임사에서 이런 일을 어떤 말로 분칠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