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이준석 대표,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유달리 ‘텔친’(텔레그램 친구)이 많다. 후보 때부터 텔레그램과 문자로 톡을 나누는 인사들을 많이 뒀다. 정치권,법조계, 학계, 관료, 언론인, 유튜버 등 다양했다. 이들의 조언에 윤 대통령은 일일이 응했다. 귀를 여는 건 대통령 후보로서 좋은 점이다. 그런데 조언·지지 그룹이 모래알처럼 파편화돼 있었다. 성향도 출신도 제각각이었다. 한마디로 중구난방, 조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가 윤 대통령과 직접 통하려 했고 그의 귀를 잡으려 했다.

대선 캠프는 잡탕밥에 가까웠다. 현역 의원 출신 ‘윤핵관’들이 전면에 나섰지만 동지라기보다는 급조된 선거팀이었다. 윤 대통령 주변에는 검찰과 법조계 인맥인 ‘검핵관’,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건핵관’들이 깊숙이 포진해 있었다. 여기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안철수 의원, 이준석 대표 진영(준핵관)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결코 비빔밥이 되지 못했다. 물과 기름이었다.

후발 주자인 이 대표가 불을 질렀다. 그는 두 번이나 가출하며 윤 대통령의 귀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럴듯한 정치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가 진짜 원한 건 ‘윤심(尹心)’과 ‘2인자 자리’였을 것이다. ‘제갈공명의 비단 주머니 3개’를 건네고 자기 맘대로 윤 대통령을 이끌고 다녔다. 수시로 독대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윤핵관의 태클에 걸렸다. 충성심과 의리를 앞세운 윤핵관은 더 능숙하게 윤 대통령을 붙잡았다. 이 대표 말대로 “물러날 듯하다가도 귀신같이 다시 돌아왔다.”

양측은 윤심을 두고 사사건건 싸웠다. 같은 일도 다르게 말했다.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윤핵관은 “자기 욕심대로 밀어붙여 국정에 부담을 줬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윤 대통령도 권유한 일인데 생트집 잡는다”고 했다. 윤핵관 내부의 알력과 질시도 심했다. 인사와 지도부 구성 등을 놓고 수시로 암투가 벌어졌다.

윤핵관과 준핵관이 함께 밀려나자 ‘검핵관’과 늘공(공무원) 출신 ‘늘핵관’들이 앞으로 나섰다. 검핵관들은 대통령실 인적 개편과 공직 감찰을 주도하며 윤핵관 세력을 밀어냈다. 늘핵관들은 정책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그래도 대통령을 움직이는 건 ‘건핵관’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당과 협력 없이 이들 중심으로 국정을 펴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 주변엔 언제나 여러 측근 그룹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견제하되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과 동지애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 주변엔 그게 없다. 한번도 제대로 된 원팀을 보여주지 못했다. 서로 편 갈라 싸우기만 했다. 윤 대통령은 그걸 보고도 방치했다. 동지를 규합하고 원팀을 만들어 지지층을 키우는 것이 정치다. 상대 편까지 보듬어 함께 가는 것은 더 큰 정치다. 그걸 해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지금 여권은 사분오열돼 있다. 이 대표는 원수가 됐고, 비윤(非尹)은 소외감을 토로한다. 친윤(親尹)도 갈라져 있다. 대선을 돕고도 밀려난 사람들은 대놓고 서운함과 실망감을 표출한다. 기존 지지층의 절반은 떨어져 나갔다. 반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대표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똘똘 뭉치고 있다. 친명과 친문이 ‘방탄 동맹’을 맺었다는 말도 들린다. 분열된 집권 세력으로 169석 거대 야당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윤 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을 펴나갈 수 있는 시간은 총선 전까지 1년 남짓이다. 총선에 지면 국정 동력은 사라진다. 더 이상 집안 싸움 할 시간이 없다. 폭넓은 리더십으로 여권을 통합하고 대통령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