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톱5에 드는 대학의 A과는 입시생들이 선망하는 인기 학과 중 하나다. 그런데 대학 정보를 모아놓은 ‘대학알리미’를 보면 매년 적게는 학과 정원의 10%, 많을 때는 25%가 자퇴 등으로 중도 탈락하고 있었다. 이 학과 K교수에게 문의하니 “대부분 반수(半修)에 성공한 학생들”이라며 “반수를 시도하는 학생은 그 수치의 2~3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입에서 취업을 보장하는 반도체 관련 학과에서도 수시 이탈 인원이 대거 발생했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추가합격률이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80%(40명 모집에 72명 추가 합격),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120%(20명 모집에 24명 추가 합격)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수시에 합격했어도 서울대나 의약 계열에 중복 합격한 학생이 이동한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이런 학과들은 경쟁률이 높으니 차례로 다음 점수 학생으로 채울 수 있다. 설사 수시에서 원하는 인원을 뽑지 못하더라도 정시로 이월해 선발하면 별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입학 이후 발생한다는 것이 대학 교수들의 하소연이다. 인기 학과일수록 의대를 염두에 두고 반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아 대학이 멍들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20~30%가 반수를 준비하면 그 학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 학교에서 아무리 커리큘럼을 잘 짜고 좋은 행사를 준비해도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상위권대 이공계 L교수는 “신입생 면담 때 대놓고 반수하겠다는 학생이 많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50%는 사라진다”며 “학과 예산이 학생 수에 따라 내려오는데 반수 여파로 대폭 줄어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2021년 한 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그만둔 학생도 1971명(2.6%)으로 2007학년도 이후 가장 많았다.
반수 시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의대에 합격할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대 한 교수는 “5수를 해서라도 의대를 가려는 욕망이 대학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고 했다. 28세까지만 의대 합격하면 늦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욕망의 대상인 ‘의치한’은 ‘의치한약수’로 두 자 길어져 대학의 시름도 그만큼 깊어졌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2021년 펴낸 ‘대입 N수생의 삶과 문화’ 보고서엔 왜 상위권 학생들이 3수, 4수 하면서 의치한에 가려하는지 육성이 담겨 있다. 3수로 지방 소재 과학기술원에 합격한 한 학생은 “의치한은 6수를 하든, 7수를 하든 가기만 하면 전문 자격증을 얻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취직 문제도 없으니 가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요”라고 했다. 그는 “7수 해서 의대 보내주면 저 갈 수 있어요”라고 했다.
원하는 좋은 학과를 가려는 마음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무한 반수로 인한 대학 황폐화, 사회적 낭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이 문제에 대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들이 반수를 줄이기 위해 1학년 1학기는 휴학을 금지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혹시 대입 제도를 바꾸어 이 문제를 완화할 방법은 없을지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반수 하는 것을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느냐. 사회가 변하기 전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이 문제가 대학, 학과의 위신에 관한 문제라며 쉬쉬하고 있었다. 여기에 인용한 말도 모두 익명을 전제로 해준 것이다. 그러나 쉬쉬하면서 한탄만 하기에는 이 문제 폐해가 너무 커졌다.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올리고 교육 전문가, 대학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찾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