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지난 22일 펜타곤에서 핵우산 훈련을 실시한 뒤 공동 발표를 통해 ‘북한 정권의 종말’을 경고했다. 핵을 쓰면 김정은 정권을 지구상에서 없애겠다는 얘기다. 바이든 정부가 공식 문서를 통해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한 게 벌써 세 번째다. 미 국방부가 작년 10월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처음 등장했고, 다음 달 한미 국방장관이 함께한 연례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도 들어갔다.
미국 정부가 공공연하게 북한 정권의 종말을 입에 올리는 건 이례적이다. 익명 관리의 말이 아니라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거듭 발표하는 방식도 전례가 없다.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 인사들이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레짐 체인지를 주장하긴 했지만, 종교적 신념 또는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에서 나오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대북 군사 옵션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난제들이 최근 과학기술의 진전으로 상당 부분 해결됐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정밀 타격 계획이 무산된 뒤로 대북 군사 옵션은 미국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어떤 시나리오를 검토해도 인명·재산 피해가 막대한 것으로 나왔다. 북이 핵무장에 본격 나서면서 군사 옵션은 뒷전으로 밀렸다. 북도 이를 노렸을 것이다. 핵이 있으면 선제공격을 당할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 공격을 받더라도 핵무기가 단 한 발만 생존하면 ‘너 죽고 나 죽자’식 보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포의 핵 균형’, 상호 확증 파괴(MAD)의 원리다. 북이 이동식 발사대(TEL)와 지하 벙커, 잠수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핵무기의 생존성을 높여 보복 능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과학기술 성과들이 최근 몇 년간 쏟아졌다. 기술적 진전은 감시·정찰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조금 과장하면 북이 운용하는 수백대의 TEL을 상시 감시하는 수준이 됐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미국의 SAR(영상레이더) 정찰위성은 북한 상공을 지날 때마다 북한 전역에서 기동하는 군용 차량을 대부분 식별·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저궤도 SAR 위성은 북한 상공을 하루 2~3회 지난다. 15대만 배치해도 감시 주기가 30분대다. 스페이스X가 매달 인공위성 수백대를 우주에 뿌리는 시대다. 이 회사 고객 중엔 펜타곤도 있다.
집중 감시는 유사시 제거를 전제로 한다. 관건은 1차 공격을 통해 핵 보복 능력을 없애면서도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존의 전략 핵탄두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정밀도는 떨어지고 폭발력과 방사능 낙진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북 군사 행동의 결심을 주저하게 만드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최신형 저위력 핵탄두(전술핵)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2020년 실전 배치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용 탄두 W76-2가 대표적이다. 요새화된 지하시설을 확실히 파괴하면서도 족집게 타격이 가능하다. 미국 오하이오급 잠수함 14척이 이 무기를 싣고 있다. 한미 외교·국방 관리들이 지난 23일 기념촬영을 한 웨스트버지니아함이 그중 하나다.
미국의 잠재적 타격 대상엔 김정은을 비롯한 전쟁 지휘부가 포함돼 있다.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을 스토킹 수준으로 지켜본다”고 했다. 북이 작년 9월 김정은 등 지휘부가 공격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의 법을 채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령의 안위를 걱정할 만한 심각한 징후를 감지했다는 뜻이다. 북이 겁내는 미국의 군사기술적 우위가 저위력 핵탄두와 정찰위성뿐이겠나. 미국의 ‘김정은 정권 종말’ 운운은 빈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