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연구자인 롤런드 임호프가 실험을 했다. “독일에 있는 한 회사가 연기를 감지하는 경보기를 개발했는데, 이 장비가 직원들에게 메스꺼움과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가짜 뉴스를 흘렸다.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회사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개선 요구를 거부했대...”
다음부터가 진짜 실험이었다. 피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는 “이것이 비밀 정보”라고 말해줬고, 다른 그룹에게는 “널리 알려진 정보”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비밀 정보’라고 했을 때 ‘메스꺼움 유발’을 ‘사실’로 믿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사람들은 ‘숨겨진 진실’이라고 할 때 적극 공감했다. 왜 메스꺼움을 유발하는지 과학적 근거는 관심 없고, ‘숨겨진 진실’을 공유하는 소수 그룹에 끼었다는 점에 열광했다.
논픽션 작가 리 매킨타이어의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말 거는 법’이라는 책을 보면 다양한 음모론이 소개돼 있다. 평평한 지구론자들은 미시간 호수 72㎞ 밖에서 시카고를 관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지구 곡률을 부인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은 1998~2015년 지구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9.11 테러를 부시 정부가 기획했다는 주장은 음모론의 고전에 속한다. 미 식품의약국이 의도적으로 암 치료제 허가를 보류하고 있다거나, 연방준비제도가 2008년 금융 위기를 일부러 조장했다고도 한다.
유사 과학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음모론도 있다. 비행기가 하늘에 남기는 비행운(콘트레일)은 비밀 정부가 국민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약물을 뿌리는 프로그램이라는 ‘켐트레일’ 주장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한국에도 중금속 화학구름을 뿌린다는 고발 글과 사진이 나온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5G 이동통신 송전탑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이런 음모론은 포퓰리즘과 섞일 때가 많다. 특히 “정부 차원의 포퓰리즘은 음모론을 횡행하게 만들고, 과학적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도 피해를 준다”는 연구도 있다. 42국을 대상으로 코로나 초과 사망률을 조사했더니 포퓰리즘 정부에서 2배 이상 높았다.
음모론이 영화의 소재가 되면 심각한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2005년 이후 한국에서는 음모론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탈원전 정책도 현실에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재난 영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음모론 영화에 상당히 취약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관객들이 진영으로 뭉치면 확증 편향이 더 단단해진다.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은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있거나,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거나, 혹은 의외로 낮은 자존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핼러윈 참사와 같은 “거대하고 감당하기 힘든 사건에 직면했을 때 통제력 상실과 불안에 대처하는 일종의 대응 체계로 작용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청담동 술자리가 있었다고 믿는 국민이 30%에 이른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에는 아직도 “첼리스트의 입을 누군가 막았다” “정권 실세들의 추악한 술자리가 문제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란 댓글이 달려 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가 우리 해안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세슘이나 삼중수소 농도, 이것을 측정하는 것은 과학이다. 광우병과 사드 전자파도 과학이다. 호남 가뭄 피해와 4대강 보 상시 개방과의 상관관계도 과학이다. 그러나 포퓰리즘 음모론자는 과학을 이념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미국 학자 톰 니콜스는 책 ‘전문가와 강적들’에서 사실 관련 이슈를 정파적 다툼 속에 빠뜨리는 상황을 ‘심판 없는 하키 게임’에 비유했다. 관중이 수시로 빙판 위로 난입하는 아수라장이 돼버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