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생률은 1.26명인데, 우리나라는 0.78명이다. 한일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 극심한 저출생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도 아직 턱없이 부족한 출생률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과 격차가 까마득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2001년 출생률이 1.30명을 기록해 일본(1.33명)에 역전당한 후 20여 년째 한 번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언제 출생률 1.0명이 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이런 한국과 일본의 출생률 격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국에 사는 일본인 전문가를 만나 평소 궁금했던 이 문제를 물어보았다. 그는 뜻밖에도 일본은 그나마 지방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엔 지방마다 명문대가 있어서 굳이 도쿄로 몰려들 이유가 적은 편인데 그것이 한국보다는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전세 제도가 없어서 우리처럼 결혼하려면 억대의 돈이 필요하지 않고 대입 준비도 우리보다 덜 빡빡해 사교육 문제가 우리만큼 심각하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의 가장 큰 허들로 꼽히는, 그래서 저출생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주거와 교육 문제가 우리보다 나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지방 명문대가 버티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그의 얘기를 듣고 올해 QS 대학평가를 보니 일본 사립 명문인 게이오대·와세다대 앞에 교토대, 오사카대, 도호쿠대, 나고야대, 규슈대, 홋카이도대 등 지방대가 6개나 있었다. 그 바로 뒤에도 쓰쿠바대, 히로시마대, 고베대 등이 버티고 있었다. 이런 대학들이 있어서 지방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굳이 무리해서 도쿄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일본 기업들도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지방대 출신들을 적절하게 배려하는 것이 일정 정도 저출생이 최악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2023학년도 전국 188개 대학 중 정시 경쟁률이 3대1을 밑도는 대학이 총 68곳(35.2%)이었다. 정시는 군별로 3번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3대1보다 낮으면 미달로 본다. 이 가운데 86%(59곳)가 지방대였다. 마지막 보루라 여겨지는 지방거점국립대학(지거국)도 휘청이고 있다. 부산대, 경북대, 충남대, 전남대, 전북대 등도 근래 2월이면 신입생을 추가 모집하느라 정신 없다. 지방거점국립대의 2021년 자퇴생은 전체 6366명으로 5년 전인 2016년(3930명)보다 1.6배 늘어났다.
인구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 초저출생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이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엄청난 집중”이라며 “엄청난 집중이 물리적인 밀도만 아니라 젊은 층의 경쟁 심리, 불안감까지 높여 출생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수도권 집중을 풀지 않고는 아무리 주거·교육·보육 문제 등 개별 문제에 집중해도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글로컬(Global+Local)대 30 사업을 막 시작했다. 30개 비수도권 대학을 선정해 5년간 1000억원씩 3조원을 지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올해 10개 대학을 선정할 예정인데, 얼마 전 15개 대학을 1차 예비 지정했다. 생각해보면 이 사업에 대학 구조조정, 지방대 살리기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이 성공해야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지방에 짱짱한 대학 30개가 있으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심리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글로컬대 30 사업 성패가 저출생 극복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