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 첫 번째. 집에서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2023)와 할리우드 영화 ‘인 타임’(2011)을 다시 봤다. ‘패러다이스’는 인간의 잔여 수명을 사고팔 수 있다는 흉칙한 상상으로 만든 영화다. 어떤 가난한 청년이 자신의 수명 중에 15년을 떼어내 80만유로를 받고 파는 장면이 시작 부분에 나온다. SF공상 과학에서도 가당찮을 얘기다.
‘인 타임’에서는 왼쪽 팔뚝에 전광 숫자로 표시되는 잔여 수명이 나오는데, 화폐와 똑같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도 카운터 리더기에 팔뚝을 갖다 대면 4분이 빠져나간다. 잔여 수명 수백 년을 가진 부자가 있는가 하면 근근히 24시간을 채워가며 사는 빈민층도 있다.
발칙한 상상 두 번째. 벨기에 소설가 아멜리 노통은 오래전 자신의 책에서 ‘기간제 계약 결혼’ 얘기를 꺼냈다. 모든 결혼을 부동산 임대 계약처럼 2년마다 갱신하자는 것이다. 그때 부부 쌍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혼 계약이 자동으로 종료된다. ‘검은 머리 파뿌리’ 서약은 전설이 된다.
발칙한 상상 세 번째는 ‘결혼을 2번 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2번 하되 초혼 청년과 재혼 중년 여성을 짝짓고, 초혼 처녀와 재혼 중년 남성을 짝짓자는 것이다. 정서적, 경제적 조화를 이룰 수 있어서 인류의 총체적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존 밀림을 탐사해 보면, 이미 이렇게 하고 있는 원주민 부족을 찾을 수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발칙한 상상 네 번째. 신체적 아름다움을 점수화하자는 것이다. 얼굴과 몸매가 얼마나 훌륭한지 측정치를 만들고 등급을 매겨서 여러 계약 조건 중에 하나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은 측정하고 적성은 검사를 하면서, 미적 조건은 왜 짐짓 무시하는 척하는가. 그런 위선을 그만두자는 제안이다. 입사, 입시, 결혼 중매, 공무원 채용 때 공식화하자고 한다.
마지막 발칙한 상상. ‘1인 1표’로 알고 있는 평등선거 원칙을 이제 종료한다. 대신 재산세, 소득세, 평생 사회 공헌도, 병역, 출산, 부모 효도 평판 등을 지표화해서 1에서 10까지 가중치를 두고 투표 때 적용하자는 상상이다. 재산권과 선거권을 연동하는 로크주의를 일부 되살리면서 동시에 아동 선거권도 인정해 주자. ‘합리적 가중치’에 우리가 합의할 수만 있다면 되잖겠는가.
아차 잊을 뻔했다. 이참에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서 기대 여명도 투표 가중치에 산입하자. 다만 반비례로 하자. 살날이 얼마 안 남은 어르신들은 어떤 정당 후보에 대해서도 개인적·정파적 쏠림 없이 중립을 지킬 수 있다. “미래가 짧으신” 그분들이 정치꾼들에게 뭘 바라고 왜곡된 선택을 하겠는가.
그런데 엊그제 “18년간 시부모를 모셨다”는 김은경 말을, 미국 사는 시누이라고 밝힌 사람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폭로하는 바람에 김은경은 졸지에 모든 신뢰를 잃고 말았다. 어디까지가 참 인생인지 알 수 없게 됐다.
헌법 제41조와 제67조는 국회의원·대통령을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고 돼 있을 뿐 1인 1표라고 못 박지는 않았다. 공직선거법 제146조에 ‘투표는 1인 1표로 한다’고 돼 있다. 여야 합의만 하면 개헌까지도 필요 없이 법만 살짝 고치면 된다. ‘투표는 1인 1표로 하되 가중치를 둔다’, 이렇게.
이미 우리네 ‘선진(?) 정당’들은 자기들끼리 치르는 각종 선거에서 대의원, 책임(권리) 당원, 일반 당원에 따라 투표권 차별을 두고 있다. 지금도 총선은 평등 원칙이 무시당하고 있다. 30만7000명이 국회의원 1명 뽑는 선거구(경기 화성 을)는 13만4000명이 1명을 뽑는 곳(부산 남구 을)보다 2.3배 불평등하다.
결론. 때론 극단적이고 발칙한 상상이 중심 잡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