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롱 피아비가 지난 9일 경기도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3-2024시즌 2차투어 ‘실크로드 안산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통산 6승'을 의미하는 손가락을 펼쳐보이고 있다. 2023.7.10/뉴스1

국내 여자 프로당구 최강 중 한 명인 스롱 피아비는 모국 캄보디아에서 스포츠 영웅이다. 얼마 전 60여 년 만에 조국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경기대회(Sea Game)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가 압도적 실력으로 다른 나라 선수를 물리치는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모국에서 그의 인기는 전성기 박세리나 김연아 못지않다. 돈과 명예를 얻었고, 선행도 많이 하는 그를 국내 당구계는 ‘캄보디아 김연아’라고 부른다.

빈농의 딸 셋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다.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 큐를 잡은 것이 인생을 바꿨다. 타고났는지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입문 1년도 안 돼 우승했고 국내 1위가 됐다. 2021년 남보다 2년 늦게 LPBA(여자프로당구)에 데뷔했는데 현재 최다 우승(6승)을 올리고 있다. 지금 시점 국내 ‘톱2′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우리 당구계에 큰 재산이다. 한국 선수들과 펼치는 승부는 불꽃이 튄다. 덩달아 국내 당구 수준도 높아졌다. 당구계는 우리 여자 당구(3쿠션 기준)가 세계 최고일 거라고 본다. 국제적 주목을 받을 정도로 흥행도 성공적이다. 그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스롱을 빼놓을 수 없다.

인구 1700만 캄보디아는 관광지 ‘앙코르와트’와 공산주의 독재자 폴포트 정권이 저지른 ‘킬링필드’로 알려진 나라다. 1인당 GDP는 1900불 정도다. 그 나라 출신으로 국내에 상주하는 사람은 4만5000명에 불과하다. 스롱을 보면서 탁월한 인재는 어느 나라에도 있다는 걸 절감한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175만2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3.4%다. 앞으로 이 비율은 빠르게 커질 것이다. 한국인 인구는 작년 처음으로 5000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사회 곳곳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난리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전쟁이다. 최근엔 맞벌이 부부 자녀 보육을 위한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이 이슈가 됐다. 곧 시범 사업으로 필리핀 등에서 100여 명이 온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서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우린 그들을 3D 업종 ‘저임금 노동자’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5년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평론가 마틴 울프를 인터뷰했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는 그를 런던에서 낳았다. 그는 “런던만큼 세계를 봐야 하고, 세계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곳도 없다”며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나를 ‘국제적’으로 만든 결정적 배경이었고, 그건 행운이었다”고 했다. 그는 영어, 세계 최강 제국의 역사, 무역 강국 전통, 국가 경제 규모가 작아 다른 세계 나라와 연계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이 영국을 자연스럽게 국제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영어와 제국을 빼면 다른 조건은 한국도 같다.

작년 인도계 3세 리시 수낙이 영국 총리가 된 건 충격과 감탄 그 자체였다. 대영제국 후예들이 옛 식민지 인도의 후손을 지도자로 뽑은 것이다. 영국 경제계도 이민자 존재감이 엄청나다. 지난 5월 선데이타임스가 발표한 영국 ‘최고 부자’ 1위, 4위는 모두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미국과 유럽엔 이런 스토리가 수두룩하다. 우리 사회에선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자국뿐 아니라 뛰어난 외국 인재를 얼마나 영입하고 키우느냐가 흥망성쇠를 가르는 시대다. 많은 외국 인재가 한국에 온 것을, 또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행운이고 자랑이라고 여기는 때가 온다면 우린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일 게다. 나도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에 살고 싶다. 그러려면 우리 수준이 ‘글로벌’해야 하는데 그 첫발은 세계가 인정하는 전문가를 ‘돌팔이’라고 폄훼하고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과학과 상식을 무시하는 ‘무지’와 ‘이념적 위선’을 물리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