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조국에 선사하고도 간첩으로 의심받다가 공직에서 쫓겨났다.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억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의 삶을 다룬 대표적인 전기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인 것도 억울함을 강조한 제목이다.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가 제우스에게 벌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원자폭탄을 만들고도 국가에 버림받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국내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도 그를 누명 쓰고 쫓겨난 인물로 그렸다.

우리나라 고위직 출신의 일부 ‘억울 호소인’들에게 이런 오펜하이머가 구원의 빛으로 다가왔나 보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혐의로 수사받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올봄 프랑스에서 귀국할 때 손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들고 있었다. 자신이 부당하게 탄압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였다. 온 가족이 공모해 입시 부정을 저지르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법무장관은 지난주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책을 냈다. 소셜미디어에선 ‘조국은 오펜하이머’라는 글이 돌았다. 비서를 성추행하고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시장 지지자들도 그를 억울하게 누명 쓴 오펜하이머라고 했다. 국회 회기 중 거액의 코인 거래를 해놓고도 법적 잘못은 없다는 말로 국민적 분노를 산 국회의원도 같은 부류다. 이들은 저마다 억울함을 토로할 뿐,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에 끼친 해악은 외면한다. 이런 태도가 보여주는 의미는 명백하다. 공적 책임감의 실종이다.

오펜하이머가 국가의 기밀 접근권을 빼앗기고 공직에서 물러난 것이 단지 그가 받은 간첩 혐의 때문만은 아니다. 오펜하이머를 원자탄 개발 드림팀 책임자로 발탁했던 그로브스 장군은 보안 청문회에 소환당한 오펜하이머를 간첩이 아니라며 적극 변호했다. 그런데도 그를 공직에서 몰아내는 것엔 동의했다. 원자력 기밀 접근을 계속 허용하기엔 국가가 지게 될 위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오펜하이머는 동생과 아내, 내연녀, 다수의 친구가 공산주의자였다. 자신도 한때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했다. “소련은 2차대전 동맹국이니 핵폭탄 정보를 넘기자”는 유혹도 여러 차례 받았다. 동료 중에서 소련 간첩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의 결백을 믿으면서도 그에게 원자력 기밀 접근권을 주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오펜하이머도 기밀 접근권 회수 결정을 받아들였다. 공직에서 쫓겨난 그에게 주변에서 “이런 대접을 받느니 다른 나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며 거부했다. 개인적 억울함보다 국가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여겼기에 보일 수 있었던 태도다. 이런 그에게 국가도 공직 접근만 제한했을 뿐, 죽을 때까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에피메테우스라는 동생이 있었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근시안적 인간이어서 유혹에 잘 넘어갔다. 제우스는 불을 갖게 된 인간을 혼낼 목적으로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보냈다. 판도라의 미모에 반한 에피메테우스는 “신이 주는 선물을 받아선 안 된다”는 형의 경고를 무시했다. 이후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든 악덕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다.

당대표, 장관, 시장, 국회의원은 보통 사람 이상의 공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법적 시비에 휘말린 이들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 나오든, 그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동안 개인의 신원에만 매달렸고, 그 결과로 공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냉소와 조롱, 환멸과 불신을 키웠다는 점에서 억울한 오펜하이머일 수 없다. 기껏해야 오펜하이머 호소인이고, 더 직접적으로는 세상에 혼돈을 초래한 에피메테우스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