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에 대한 약 20년 전 기사를 찾아보면 근래 보도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그때부터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에서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진료 과목 지원자가 줄기 시작했고,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과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유도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산부인과 등은 저출생 현상 시작으로 수입은 줄고 의료사고 위험 등 업무 부담은 과중해져서, 피부과·성형외과 등은 일하기 편하고 고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필수 의료 위기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곪기 시작한 이슈라는 얘기다.
복지부는 의료인 수급 정책, 건강보험 수가(의료 서비스 가격) 정책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몇 번 시도했지만 의사들이 파업으로 강력한 장벽 쌓기를 해서 어려웠다고 치자.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사들 주장의 핵심은 의사 총량이 아니라 의사 배분이 문제이니 먼저 필수 의료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복지부가 그동안 가만있었던 것은 아니다. 복지부 보도 자료 코너에서 ‘필수 의료’를 검색하면 지난 2015년 이후에만 50건 가까이 필수 의료 문제에 대응해 온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수가를 현실에 맞게 과감하게 손보지 않고 전공의 수련 보조 수당을 50만원, 100만원 올리는 것 같은 찔끔찔끔 대책을 내온 것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 결과가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의료 상경’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간단한 말들이지만 하나하나에 국민들의 큰 불편과 국민 생명에 대한 위험이 담겨 있다.
수가를 올려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복지부가 지난해 7월 내놓은 보건의료 인력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 연평균 수입은 2억3070만원으로, 지난 10년간 보건의료 직종 중 가장 빠르게(연평균 5.2%) 증가했다. 이 같은 의사 수입은 기준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구매력 평가(PPP) 환율 기준으로는 OECD 최고 수준이다. OECD 주요국에선 의사 수입이 간호사의 두세 배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5배 이상 수준인 것도 참고할 만하다. 복지부가 수가 협상에서 의사들에게 휘둘리면서 전체 의사들 수익은 크게 늘려놓고 정작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 의료는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수치도 없다. 이런 조건이 의대 입시 열풍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필수 의료 의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확실하다. 심장 수술이나 뇌 수술 의사는 연봉이 10억원 안팎, 심혈관 수술 의사는 7~8억원 수준으로, 일반 내과 의사(3억원 남짓)의 두세 배라고 한다. 어려운 수술을 하는 의사는 그만큼 가치를 인정해 주고 보상이 따르니 전공의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도 진작부터 이런 구조를 향해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동안 복지부의 수가 조절 정책이 어느 정도라도 작동했으면, 필수 의료 분야는 올려주고 수가가 필요 이상으로 높은 분야는 억누르는 정책을 꾸준히 펴왔다면 어땠을까. 필수 의료 의사들이 못 하겠다고 하는 일도,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할 명분도 현저하게 줄었을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에야 “복지부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의료 수가부터 손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일을 왜 지난 20년 동안 게을리했는지 궁금하다. 복지부에서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한마디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