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승리는 미묘하다. 최고 팀이 꼭 최후 승자가 되란 법은 없다. 대체로 선수 가치는 연봉이 말해 준다. 올해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가장 많은 팀은 SSG(연봉 총액 175억원)였다. LG는 5위(146억원). 돈 많이 쓴다고 만사형통이 아닌 셈이다.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프로야구 우승을 차지하던 날, 주위 골수 팬들이 보내는 감격 문자가 정신없이 쏟아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아본 건 처음”이라고 언급한 건 과장이 아니다.
LG는 사실 지난해에도 분위기는 좋았다. 1위 SSG와 2경기 차 2위. 3위 키움과는 7경기 차였다. SSG와 정규 시즌 대결 전적도 7승 8패 1무 호각세. 해볼 만했다. 28년 만에 드디어 우승하나 싶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 한 수 아래로 본 키움에 1승 3패로 무너졌다. 후폭풍은 거셌다. 2년간 정규 시즌 3위·2위 호성적을 거둔 감독을 경질했다. 목표는 우승.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였다. 그리고 염경엽 감독이 부임했다. 그는 지략이 뛰어나다곤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승리한 적이 없다.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은 패배자. 그러나 그에겐 실패 속에서 얻은 기백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라”고 주문했다. 선수 대기실 앞에 ‘두려움과 망설임은 나의 최고의 적이다!’라는 문구도 붙였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 단호한 결의가 이번 우승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스포츠에선 패배가 일상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를 보면서 “인생은 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세 번 하면 두 번은 지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팬이었다. 미 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신인 시절 플레이오프에서 처절한 패배를 경험했다. 지면 떨어지는 경기에서 그에게 결정적인 슛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그가 던진 공은 어이없게도 림에도 닿지 않는 ‘에어 볼(air ball)’. 그 경기에서 그는 에어 볼을 5번이나 날렸다. 팀은 결국 그 경기를 지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다만 그는 첫 에어 볼을 날리고도 주눅 들지 않고 계속 과감하게 슛을 던졌다. “패자는 실패하면 그만두지만 승자는 성공할 때까지 실패한다(Losers quit when they fail. Winners fail until they succeed)”. 그 경기는 실패했지만 그 뒤 브라이언트는 NBA 역사상 결정적 순간 가장 득점을 많이 한(clutch points) 선수 3위까지 오른다. 물론 이후 그 슛을 왜 실패했는지 연구하고 보완한 덕이다.
NBA 선수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졌다. 그의 팀 밀워키 벅스는 1번 시드, 상대 마이애미 히트는 최하위 8번 시드였다. 낙담한 채 나타난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이번 시즌은 실패(failure)한 거죠?” 아데토쿤보는 답답하다는 듯 되물었다. “당신은 매년 승진하나요? 아니죠? 그럼 당신은 직장에서 매년 실패한 건가요? 어느 한 해 잘 안 됐다고 해서 그걸 실패라고 부르진 않아요. 성공으로 가는 과정(steps to success)이죠. 마이클 조던은 15년 동안 NBA에서 뛰었고 우승은 6번 했어요. 그럼 나머지 9년은 실패인 건가요? 스포츠에 실패란 없어요(no failure in sports).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어요. 매번 이길 순 없어요. 이번엔 졌지만 더 노력해서 다시 돌아올 겁니다.”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덕분에 LG는 기어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지난 28년간 실패는 이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