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장관은 엘리트 검사로 꽃길만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지만 조국 일가 비리를 수사하자 2020년 1월 부산고검으로 좌천됐다. 5개월 만에 다시 ‘채널A 사건’을 이유로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발령 났다. 수사 일선에서 배제된 것이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인사는 “한 장관은 출퇴근 시간을 매일 체크당했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 평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연수원에 보안 점검이 내려왔다”고 했다. 후배 검사가 그를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를 뺏으려고 몸싸움을 시도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거기서 다시 4개월 만에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옮겼다. 문 정권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보다 먼 곳으로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한동훈을 왜 빨리 진천으로 보내지 않느냐며 자신보다 한참 선배인 법무연수원장에게 경위서 제출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이듬해 6월 한 장관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갔다. 법무연수원은 법무부 소속이지만 사법연수원은 사법부 산하다. 아예 행정부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때 한 장관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 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를 지켜본 인사는 “한 달 동안 죽만 간신히 먹었다. 식사를 못 하니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시련을 견디고 한 장관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자신을 못살게 굴던 법무부의 수장이 됐다. 참신한 이미지에 법과 원칙에 충실한 강직함, 반듯한 언행이 더해져 대중적 지지까지 얻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버금가는 차기 주자로 성장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도 거론된다. 꼭 그 자리가 아니라도 정치 입문은 멀지 않은 듯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정치권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본인도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한 장관이 정치를 시작하면 자신을 핍박했던 사람들과 다시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복수 혈전’을 준비 중이다. 옛 법무부의 조국·추미애 전 장관이 모두 총선 출마 태세다. 한 장관과 채널A 기자의 허위 녹취록을 KBS에 넘긴 혐의로 기소된 신성식 검사장도 “민주당 후보로 전남 순천 출마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조국 수사를 방해하고 울산 선거 개입 수사를 뭉갠 의혹을 받는 이성윤 전 서울지검장도 고향 전북 출마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그의 책을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복수(福壽·오래 살며 복을 누림)를 꿈꾼다”고 썼다. 쓰면서 또 다른 의미의 복수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 입문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복수’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복수가 얼마나 추하고 적나라했는지 온 국민이 안다.

한 장관이 정치권에 들어오면 검사 출신에 윤석열 대통령 직계라는 점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한 장관도 시비에 밝고 싸움을 피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싸우면 수많은 정치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국민은 한 장관이 앞선 이들과 다른 점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치는 복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문 정권이 실패한 원인이 거기에 있다.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원한이 있는 상대라도 어떻게든 설득하고 타협하는 게 정치다. 윤 대통령도 잘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한 장관은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저같이 사회에서 혜택받고 살아온 사람이 억울하다고 징징대면 구차하다”고 했다. 대통령들도 이루지 못한 ‘아름다운 복수’를 한 장관은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