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캠페인 연설회장에서 지지자들이 연호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다. 대다수 독자처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에 쓰나미를 몰고 온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칼럼을 쓰는 건 지난해 12월 워싱턴 DC 출장 때 ‘충격’ 때문이다. 여러 계층의 미국인을 만나면서 트럼프 재선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감지했다.

미국인 기자 A씨는 “트럼프 집회에서 휴직하고 자원 봉사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현장에 가 보면 트럼프 열기가 뜨겁다”고 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2008년 미 대선을 취재할 때가 떠올랐다. 당시 휴학하고, 휴가원을 내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을 적잖게 만났다. 미 각지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면서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물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매일 북(北)버지니아에서 포토맥 강을 넘어 출근하는 공무원 B씨는 “집 임차료, 기름 값이 오르더니 팁도 올라 식당 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미국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은 재미교포는 “트럼프가 재판 중이고 그의 인격은 좋아하지 않지만, 경제를 생각하면 트럼프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집권 가능성에 대비한 플랜B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출장이었다.

트럼프가 2025년 1월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2년 넘게 그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다행인 것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가 의외로 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은 주변의 비판에 구애받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해 왔다. 격식을 따지지 않으며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대통령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는 역대 미 대통령 중에서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가장 크다. 애창곡 ‘아메리칸 파이’를 백악관에서 부를 정도로 미국에 호감을 가진 윤 대통령과는 코드가 잘 맞을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윤 대통령이 참고할 지도자도 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장(金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며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를 만들었다. 2019년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는 온종일 아베와 골프장, 스모 경기장, 일식집을 다니며 “보물 같은 미·일 동맹”이라고 극찬했다.

아베는 북한을 잘 모르는 트럼프를 꽉 잡았다. 비핵화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미·북 관계를 배후 조종하다시피 한 사실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책 등에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아베’에 비견되는 관계를 만들면, 주한미군 철수를 막는 것은 물론 트럼프와 김정은의 위험한 거래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비확산 원리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한 민주당 행정부에는 한국의 핵무장 주장이 1㎝도 먹히지 않는다. 트럼프는 1차 임기 때 한국의 핵무장에 비교적 열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임기 내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핵실험하지 않고 신속한 핵무장으로 북핵에 맞서게 된다면, 윤 대통령은 내치(內治)에서의 아쉬운 성과를 만회하게 된다. 최소한 일본처럼 언제든지 핵보유국이 될 수 있도록 ‘핵 지위’를 높여야 한다.

워싱턴 DC를 떠나기 전 지인으로부터 “성공한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올해 거센 폭풍우가 몰려오지 않기를 바라나, 검은 비바람이 몰려 와도 댐이 튼튼하고 집 안에 먹을 것이 가득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윤 대통령은 폭풍우 속에서 춤을 추기 위해서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현안 중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