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왼쪽) 박효준. /사진=AFP 연합뉴스

1994년생 오타니와 1995년생 김하성. 그리고 1996년생 박효준. 고교 시절 야구 천재로 이름을 날리면서 메이저리그 성공을 꿈꾸던 선수들이다. 시작은 박효준이 앞섰다. 그는 2014년 116만달러(약 12억원)를 받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박효준은 고교 3학년 시절 타율 0.392, 출루율 0.558, 장타율 0.824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괴물’이란 찬사를 받았다.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작년 한국 프로 야구 각 부문 1위 기록은 각각 0.339, 0.444. 0.548이었다.

김하성은 박효준 고교(야탑고) 1년 선배. 유격수를 맡다가 후배 박효준에게 밀려 2루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박효준이 화려하게 미국행을 발표한 그해 김하성은 한국 프로 야구 키움에 2차 지명을 받고 1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한국에서 절치부심한 뒤 후배보다 7년 늦게 2021년 미국 땅을 밟았다.

그 뒤 처지는 뒤바뀌었다. 김하성은 지난 3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치고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리그 골드글러브까지 받았다. 향후 몸값이 1억달러를 넘을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넘친다. 반면 고교 때 김하성을 밀어낸 박효준은 7년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2021년 잠깐 메이저리그에 첫선을 보였으나, 다시 마이너로 떨어졌다. 이후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지난 연말 소속 팀에서 방출됐다. 아직 새 팀을 잡지 못한 상태. 어느덧 28세다.

오타니 역시 메이저리그 정복이 인생 목표였다. 고교 졸업 후 메이저 직행(直行)을 선언하면서 일본 프로 야구 구단들에 ‘저 지명해 봤자 소용 없으니 다른 선수 뽑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런데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닛폰햄이 아랑곳 않고 그를 지명했다. 그리고 설득에 나섰다. 오타니 앞에서 설명회도 가졌다. 유명한 ‘오타니 쇼헤이군 꿈에 대한 이정표(大谷翔平君 夢への道しるべ~)’라는 발표회였다. 요약하자면 지금 가는 것보다 일본에서 충분히 기량을 쌓고 나중에 가는 게 유리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통계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 메이저리그 진출 사례를 분석해 보니 (자국) 프로 리그를 거친 선수는 42명 중 29명(69%)이 안착했지만 그렇지 않은(고졸 신인 직행 등) 선수는 108명 중 6명(5.6%)만 성공했다. 오타니는 마음을 바꿔 닛폰햄에서 5년을 뛴 다음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다음 벌어진 일은 다 아는 대로다.

메이저리그는 기회의 땅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무대에 설 실력이 갖춰지기 전, 마이너 단계에선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한다. 갓 성인이 된 어린 선수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국 땅, 그것도 시골투성이인 마이너 여정을 버티고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타율적인 훈련에 길들어진 고교 선수들에게 철저히 자율적인 미국 야구는 철저히 낯설기도 하다. 은퇴한 한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는 “고교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건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마이너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기 때문이다. 박효준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초고교급이라 평가받는 수많은 한국 고교 선수가 숱하게 미국 문을 두드렸지만 추신수를 제외하곤 거의 모두 좌절했다.

성공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충분히 준비되기 전 꿈과 의욕만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결과론이긴 하겠지만 김하성과 오타니는 때를 기다렸고, 박효준은 성급했다. 모든 게 개인의 선택이자 책임일지라도 아까운 재능이 때를 잘못 골라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일본 선수들은 이런 실상을 일찍 깨닫고 무리한 고졸 메이저 직행은 삼가는 추세다. 한국은 매년 나온다. 도전 자체는 아름답다. 다만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한번 더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