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부차는 월나라 구천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장작더미에서 잤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구천을 사로잡았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부차의 노예 생활을 하다가 겨우 풀려났다.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기원전 473년 구천은 부차의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초등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구천의 복수는 20년간 쓸개를 맛봐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구사일생 돌아온 구천은 월나라 인구를 적극적으로 늘렸다. 자녀를 많이 낳은 가구에는 세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줬다. 출산 직전 임산부에겐 국가가 의사도 보냈다. 영유아 복지에 투자했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젊은 남녀 간 결혼을 적극 지원했다. 중국 남부인 월나라 땅에는 야만족으로 불리는 소수민족이 많았다. 구천은 이들도 월나라 백성으로 받아들였다. 경제활동 인구와 병력 자원이 늘면서 월나라 국력이 오나라를 앞섰다.

2000년 전 로마 제국도 출산율 문제로 머리를 싸맸다. 60세까지 모든 남성은 반드시 결혼하게 했고, 노총각에겐 벌금(일종의 독신세)을 물렸다는 기록도 있다. 50세까지 여성은 남편이 사망하면 2년 내 재혼하도록 했다. 자녀 셋을 낳은 여성은 세금을 면제해줬고, 관리를 채용할 때도 자녀가 많으면 우대했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으면 재산 상속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로마는 인구 부족으로 고민했다. 상류층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기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국의 인구는 전성기 7000만명에서 서로마 제국 멸망 때는 5000만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인구와 국가 존립의 상관관계는 21세기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100만명이고 북한 인구는 2500만명 정도다. 유엔경제사회국에 따르면 2022년 북한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34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같은 해 우리나라 신생아는 25만명을 밑돌았다. 인구는 한국이 두 배인데 태어난 아기는 북한보다 26% 적은 것이다. 중국도 저출생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한 해 1000만명이 태어난다. 현재 한국군은 50만명, 북한군은 110만명이다. 북한은 핵무기도 있다. 최첨단 AI 무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군사력의 기본은 병력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남성은 군대를 두 번 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 예식장이 없어지고,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산후조리원이 사라지고 있다. 유치원이 노인 시설로 바뀌고,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이 5만명대로 추락했다. 곧이어 중·고교가 급감하고 대학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저출생 재앙’이 코앞이다.

세계 최악인 저출생 원인은 모두가 안다. 과도한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대표적이다. 지금 부산 신공항을 짓는 데 14조원을 쓴다.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 철도’ 건설엔 9조원이 든다. 지난해 다 못 쓴 교육재정교부금만 7조5000억원이다. 이것만 더해도 30조원이다. 신생아 1인당 1억원씩 준다고 해도 30조원이면 30만명에게 줄 수 있다. 신혼부부 10만쌍에게 3억원짜리 아파트를 공짜로 나눠줄 수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23만5000명이다. 작년 출생신고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 충북이 유일했는데, 출생아 1인당 1000만원을 5년간 나눠준다는 ‘현금 정책’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2500년 전 월나라 구천은 소멸 위기의 나라를 구하려고 비상한 인구 정책을 썼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저출생 문제는 쓸개를 핥던 구천의 월나라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