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왼쪽에서 세번째) 더불어민주당 민주연합추진단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 추진 연석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민주연합추진단장, 조성우·박석운·진영종 연합정치시민회의 공동운영위원장./뉴스1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4·10 총선의 중요한 분기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거짓말쟁이’ 꼬리표를 또 하나 추가하며 위성정당 비례제(준연동형)를 유지키로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위성정당 방지’ 대선 공약을 파기하며 하루에 4차례 고개를 숙였다. 좌파 진영에서 이 결정을 사전에 예상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이가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정의당이 녹색당과 1회용 선거 연합 정당을 만들자 “정의당이 다시 민주당 2중대의 길로 가고 있다”며 탈당했다. 그는 “정의당은 조만간 조국 신당과 개혁연합신당, 진보당 등과 함께 민주당 주도 비례 위성정당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정당으로 몰락해 가는 걸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정의당 주류가 민주당한테 질척거린다”고도 했다.

류 전 의원 지적대로 정의당은 2020년과는 달리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에 참여할 태세며 민주당은 이번엔 제대로 ‘2중대’를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이 처음 도입될 때만 해도 “민주당 주도가 아니고 다수당이 소수당에 의석을 양보하는 것” 이라고 가림막을 쳤다. 이번엔 다르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 개혁 세력의 맏형으로 주도적으로 그 책임을 이행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추진단장도 “맏이 격인 민주당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선거 연합을 주도하겠다”고 했다. ‘맏형론’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민주당이 기획·총괄·운영하는 식민지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임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의당을 한때 대표했던 어떤 의원은 이 대표 결정에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준비위 등이 참여한 새진보연합은 아예 대놓고 “환영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 대표의 위성정당 방지 공약 파기는 문제 삼지도 않는다. 정의당을 비롯한 좌파 군소 정당은 ‘반(反)윤석열 연합’을 명분으로 민주당의 식민지 정당에 참여하면 국회 의석을 늘리기 유리하다고 본다. 여기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괜찮다는 식의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정의당에서 항소심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의원이 의석을 다른 이에게 승계시키기 위해 사직하고, 의원직 나눠 먹기를 위해 ‘비례대표 2년 순환제’를 정한 것도 이런 가치관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러고도 ‘진보’ 라고 불리기를 바라나.

위성정당 비례제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배제하고 강행 처리한 선거법이 모체다. 이 때문에 4년 전 의원 꿔주기, 떴다방 정당 등으로 한바탕 광풍이 분 것을 유권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중앙선관위 의뢰로 한국정치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1대 선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비례·위성정당의 난립(20%)이 꼽혔다. 그다음이 비현실적 공약(17%), 비방·흑색선전(14%)이었다.

유권자들이 지적했듯이 총선이 끝나면 사라질 떴다방 정당에 표를 찍으라는 것은 우리 국민의 높아진 의식에도 맞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바닷가의 모래성 같은 1회용 가설(假設) 정당은 어떤 명분을 들이대도 용인하기 어렵다.

좌파 군소 정당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원칙을 지켜가며 국민의 표를 얻는 길을 가야 하나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식민지 정당에 들어가 국회에 진입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만든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정당들이 과연 국민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나.

이럴 때 그나마 소수 정당의 자존심과 명분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노회찬 전 의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노 전 의원이라면 명분 없는 2중대 노릇에 분명히 선을 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