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1주일… 그래도 병원을 지키는 사람들 - 2월 26일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의료진 한 명이 소파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주요 병원 100곳의 전공의 1만2000여 명 중 1만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23일 기준)한 상태다. 이에 남아있는 의료진에게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연합뉴스

‘탕핑(躺平)’은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중국 신조어다. 중국의 저성장, 실업난 등에 지친 젊은 세대가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다. 대학 캠퍼스나 길거리에 드러누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자포자기 심정을 표현하는 중국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탕핑족’이라 부른다. 중국 정부는 이 현상이 국가 미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다.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의 특징 중 하나는 전공의들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있고 대표도 있지만 정부와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 2일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전공의들이 탕핑 전략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 젊은이들처럼 그냥 집에서 쉬거나 여행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전공의가 많다고 한다.

처음엔 이전 집단 휴진 때마다 정부가 각 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처벌 표적으로 삼아서 몸 사리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정부가 여러 차례 “대표단 구성은 법 위반에 해당하는 집단행동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혀도 요지부동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전공의들이다. 이들이 정부와의 협상 등 대화 테이블에 나서지 않으면 의·정 갈등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전공의에게 대표단을 구성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답이 없다. “우린 대표가 없다”고 얘기한다.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집단행동 당사자들이 대화는 물론 접촉마저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들은 정부는 물론 의사협회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2020년 집단 휴진 때 의협이 정부와 막판 협상에서 전공의들을 배제했다는 논란의 후유증 때문이다. 교수들이 환자를 떠나면 여론 지지를 받기 힘드니 일단 돌아와서 얘기하자고 설득해도 안 듣는다고 한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물리더라도 떠난 전공의들이 100%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본적으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 많고, 과거보다 전문의에 대한 욕심이 줄어드는 등 과거 전공의들과 또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평생 의업에 몸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부 정책에 민감하다고 한다.

지금 전공의들은 20대 후반에서 30세 전후의 MZ세대다. 낮은 임금에 주 평균 80시간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 운영을 떠받쳐 온 직군이다. 미래 의료를 이끌어갈 ‘매우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이들이 전문의 이후를 보며 격무를 견뎠는데 정부가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이나 늘린다고 하니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진작 이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했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들에 대한 대량 징계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업무 개시 명령을 위반하고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 8800명에 대해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3차 사전 통지 중 2차를 발송한 단계다. 윤 대통령은 1일 담화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대량 징계를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면 의대생 대량 유급도 막을 길이 없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은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전공의들에게 세상이 자기들 뜻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 번쯤은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이들이 ‘탕핑’ 모드에 있는 동안 국가에서 생명을 다루는 면허를 준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