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앞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 대통령,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김범석 경제금융비서관./대통령실 제공

당 태종 때 직언하기로 유명한 위징(魏徵)이란 신하가 있었다. 황제에게 바른말을 300여 차례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루에만 간언을 4번 했다가 격노를 사기도 했다. 당 태종이 ‘정관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만든 건 위징의 공이 컸다. 위징이 죽자 태종은 ‘내 잘못을 보는 거울을 잃었다’고 애통해했다.

역사에서 목숨 걸고 직언하던 신하는 많았다. 그런데 위징이 유달리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간언보다 황제를 설득하는 능력 때문이다. 북쪽 돌궐이 세력을 키우자 태종은 18세 미만이라도 건강하면 모두 징집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위징은 황제 명령인데도 따르지 않았다. 태종이 격노하자 ‘연못의 물을 빼면 당장은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겠지만 내년에는 물고기가 없어진다. 지금 18세 미만을 군대에 보내면 훗날 세금은 누가 내고 병역은 누가 맡느냐’고 했다. 위징은 쉬운 비유를 썼고 상식에 호소했다. 위징이 거칠게 ‘아니 되옵니다’만 외쳤다면 일찍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지난 총선 전후로 대통령실과 정부·여당 주변에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으로 수사받던 전 국방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총선 직전에 굳이 출국시킨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다. 의료 파행이 악화하는데 대통령이 생방송 51분의 상당 부분을 의사 비판에 할애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집권 초부터 연금 개혁을 누누이 강조해 놓고 핵심인 ‘내는 돈’과 ‘받는 돈’에서 여야 합의가 사실상 이뤄졌는데 차기 국회로 미룬 것은 대체 무슨 일인가. 국정을 이끄는 여당이 어떻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이나 반도체법처럼 한시가 급한 민생 법안의 처리를 마지막 국회에서 뭉갤 수가 있나.

잘못된 정치·정책적 판단이 가져오는 후과는 대통령실과 당정의 고위 참모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이들의 직언과 설득으로 엇나가던 결정이 바로잡혔다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수사받는 전 장관의 출국도, 의대 증원 담화도, 연금 개혁과 민생 법안 연기도 전부 비상식적인데 결과적으로 어떤 참모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의 불통만큼 정권 참모들의 설득 능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 공무원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삼삼오오 모이면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를 화제로 삼는다고 한다. 일반 공무원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고위직들은 피할 데가 없다. 정권이 실패하면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위징은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을 구별했다. 양신은 군주 잘못을 설득해 자신과 나라를 같이 성공하게 하는 반면, 충신은 바른말만 하다가 군주와 같이 망하는 신하라고 했다. 이 정부에 양신이라고 할만한 참모가 있나. ‘순장조’가 될 충신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권 성패는 대통령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경청 태도와 참모들의 설득 능력이 모두 중요하다. 당 태종과 신하들의 대화를 정리한 고전이 ‘정관정요(貞觀政要)’다. 여기엔 태종이 신하들에게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을 피하지 말고 간언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있다. 태종은 목숨처럼 아끼던 황후가 죽자 매일 누각에 올라 황후 묘를 쳐다보며 국정을 등한시했다. 누구도 ‘역린’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을 때 위징은 ‘아버지 묘를 보시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나라를 물려받아 통치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태종은 역린을 만들려 하지 않았고 위징은 요령 있게 역린을 건드렸다. 당이 패권국이 되는 초석을 깔았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 3년 가까이 남았다. 지금이라도 ‘정관정요’를 일독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