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노동신문 1면에 실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선글라스를 쓴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인정하는 김일성의 부인은 김정숙이 유일하다. 김정일을 낳았고 ‘항일 여성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런데 북 역사서에 김정숙의 어머니 이름은 ‘오씨 여사’로만 나온다. 김일성이 장모 이름도 모를 만큼 김정숙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숙은 1949년 출산하다 32세로 사망한다. 김정일이 일곱 살 때였다. ‘김씨 여자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일성은 6·25전쟁 중인 1951년 비서였던 김성애와 비밀 결혼을 한다. 1958년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김성애 존재를 알렸다. 김성애는 자신의 아들을 김일성 후계자로 세우려고 김정일과 권력 암투를 벌였다. 김정일이 이런 계모를 그냥 둘 리 없다. 김일성이 죽고 3년 만에 김성애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고 그녀의 자식들도 평양 밖을 떠돌아야 했다. 두 번째 불행이었다.

김정일의 첫째 부인에 대해선 분석이 엇갈린다. 중국 외교부 직속 기관이 발행하는 잡지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홍일천 아니면 김일성 집무실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김영숙과 결혼한 것으로 판단한다. 홍일천이든, 김영숙이든 딸만 낳았다. 그 무렵 김정일은 영화배우였던 성혜림과 동거하며 장남 김정남을 얻었다. 김일성은 남편이 있던 성혜림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김정일이 다른 여성들에게 빠지자 성혜림은 모스크바에서 외롭게 살다가 2002년 사망했다. 모두 김정일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김정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재일 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와 살았다. 아들 김정철과 김정은, 딸 김여정을 얻었다. 그런데 고용희는 2000년대 유선암에 걸렸고 불치 상태로 고생하다 2004년 52세로 사망한다. 그러자 김정일은 22세 연하인 김옥과 동거했다. 김옥도 김정은 집권 이후 종적을 감췄다. 김씨 여자들 대부분이 요절하거나, 중병을 앓거나, 버림받거나, 숨어 살아야 했다. 자의든 타의든 후계 권력과 관련이 있다. 왕조 시대 왕비와 후궁들, 그 주변이 후계자를 놓고 암투를 벌였던 것과 다름없다.

지금 북에서 김씨 여자들의 불행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김정은 부인 리설주일 것이다. 성혜림처럼 아들을 낳아도 후계자로 일찍 낙점받지 못하면 버림받을 수 있고, 중병이라도 걸리면 어린 자식들의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인 리설주는 김정일 여자였던 영화배우 성혜림, 무용수 고용희와 계열이 비슷하다.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소문은 아직 못 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왕조 국가를 넘어 신성(神聖) 국가다. 김정은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후계자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에게 자녀가 몇 명인지, 아들이 있는지 확인은 안 된다. 1남 2녀, 딸만 2명, 혼외로 낳은 아들,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 등이 떠돈다. 확실한 건 리설주가 낳은 딸 김주애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김정은이 주애를 너무 예뻐한다는 사실이다.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면 ‘봉건사회인 북에서 딸은 후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김정은이 2022년 중앙간부학교에서 후계자를 뜻하는 ‘후사’라는 말을 꺼낸 직후 주애가 등장하고, 당 부장과 대의원에 여성 비율을 높인 것은 주애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김주애 후계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리설주일 것이다. 자신과 자식들이 사는 길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직 40세다. 김정일은 42세에 김정은을 얻었다. 김정은이 ‘김정은 배지’로 우상화를 완성한 만큼 북한의 후계 구도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판 사극의 개봉 박두다. 세습 왕조의 위기는 후계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