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입고선 온갖 모욕과 조롱을 감내하는 장군을 어떻게 봐야 하나. 국회 법사위에서 진행된 ‘해병대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입법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법청문회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종섭 전 국방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도를 넘는 모욕과 조롱을 퍼부은 정청래 위원장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군인 모독’은 이미 여러 곳에서 비판을 받았다. “어디서 그런 버릇을 배웠느냐” “토 달지 말고 사과하라”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다양하게 예의 없다” “10분간 퇴장하라”면서 어린아이에게 야단치는 내용이라 해도 모욕적인 언사를 난사했다. 군인은 유사시 생명을 담보로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 임무의 신성함 때문에 명예롭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군인을 TV로 생방송되는 현장에서 인격을 짓밟는 대우를 하는 것은 지켜보는 국민을 모욕하는 짓이다.

그렇다면 그런 모욕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반박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온순하게 받아들이는 장군은 문제가 없는가. 그런 장군이 간성(干城)으로 믿음직스러울 수는 없다. 군인은 목숨을 탈취하려고 드는 적을 상대하는 일이 숙명인 사람들이다. 엄청난 압박감과 적대적인 환경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내야 한다. 공격을 받으면 응전(應戰)하는 것이 군인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다.

청문회에서 정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공격하고 협박하는 무기로 꺼내 든 것은 국회증언감정법상의 국회 모욕죄 조항이었다. ‘증인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증언함에 있어 폭행·협박, 그 밖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여기서 겁나는 대목이 뭐가 있나. 군인의 명예와 장군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모욕과 조롱에 맞서 반박한다면 국회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인가. 설사 국회가 고발할지라도 그 혐의는 수사기관이 판단하고 법원이 확정한다. 우리 사법 시스템과 자신들이 지켜주고 있는 국민을 믿으면 될 일을, 장군들은 의원들의 윽박지르는 말 한마디에 주눅 들고 침묵했다. 장군은 수천, 수만의 장병을 지휘한다. 그 권한과 권력은 자리와 계급이 보장해줄지 몰라도, 권위는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 만인 앞에서 조롱당한 장군의 명령을 부하 장병이 마음속으로 따를까.

국방부와 군이 최근 신병교육대 훈련병 사망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군 지휘부에 그런 장군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의심이 든다. 그 훈련병은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열사병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규정을 위반한 훈련이었다. 책을 추가로 채워넣은 비정상적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뛰게 하고 팔굽혀 펴기를 시켰다.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라면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절차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와 각 군의 대표가 회의 끝에 내놓은 대책은 군기훈련에서 체력단련 종목 자체를 폐지해버리는 것이었다. 규정을 어긴 ‘사람’(중대장·부중대장)의 문제를 체력단련 훈련이라는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렸다.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이제 구보나 완전군장으로 걷기, 팔굽혀 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같은 군기훈련은 못 한다. 대신 명상과 청소, 군법교육, 반성문 쓰기와 같은 정신수양만 해야 한다. 훈련병들조차도 헛웃음을 칠 것 같다.

이런 결정을 한 군 지휘부는 도대체 국군을 어떤 군대로 만들려고 하는가. 체력단련 훈련보다는 작전훈련 중 사고 발생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러다 군사훈련을 하지 말자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군 내부에 사고 없이 무탈한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군복 입은 공무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