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영선 한국 1세대 조경가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언론공개회에서 취재진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4.4.4/뉴스1

최근 정영선 전시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정영선(83)은 한국 조경의 역사를 써온 1세대 조경가다. 우리나라 대표 건축물·수목원·미술관·공원의 조경을 주도했다. 예술의전당, 국립수목원, 올림픽조각공원, 용인 호암미술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전시 끄트머리 적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조경들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주말판 한 면을 할애해 건축가 조민석(58)을 조명했다. 제목은 ‘한국 음식처럼- 함께하는 경험(It’s like a Korean meal- a collective experience)’. 조민석은 런던 왕실 공원 켄싱턴 가든에 ‘서펀타인 파빌리온’을 세웠다. 공원 내 미술관 서펀타인 갤러리가 매년 세계적 건축가에게 의뢰해 만드는 임시 건축물이다. 참여한 이들 중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많이 나와 ‘프리츠커 예고편’으로 평가되는 프로젝트다. 올해 초 선정됐을 때 쓴 본지 기사에 한 독자는 “자유 대한민국 모든 건축가에게 격려를 보내며”라고 적었다.

세계 곳곳에서 감동을 일구는 우리 문화인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 조각의 본고장 피에트라산타에서 31년째 사는 조각가 박은선(59)은 지난달 도시 중앙 광장에 높이 11m 조각 기둥 3점을 세웠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 개관을 기념한 조형물이다. 3년 전엔 동양인 최초로 ‘명예 시민’ 호칭도 받았다. 설치미술가 강익중(64)은 오는 10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아리랑 가사를 적은 높이 5m짜리 직육면체 ‘한글 신전’ 4개를 세운다. 모두 힘으로 공갈·위협·협박한다고 얻을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룬 대가(大家)에게서만 감동을 받는 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도 감동이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은 도쿄 화장실 청소원이다. 동트기 전 이웃이 빗질하는 소리에 일어나 칫솔질하고 콧수염을 정리한다. 100엔짜리 자판기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향한다. 화장실 변기 안까지 반사경을 대고 구석구석 닦는다. 동료는 말한다. “이런 (하찮은) 일을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요? 어차피 또 더러워지는데….” 점심시간엔 샌드위치를 먹고 그림자 드리운 나무를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공중목욕탕에서 몸 씻고 집에 돌아가 문고본 소설을 읽다 잠을 청한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마치 종교 의식 같다. 지난 주말 영화를 보는데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감동과 감화로 사람을 움직이는 게 문화의 힘이다. 눈 부라리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의자 집어 던지거나 총질하지 않는다. 최근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20)가 도쿄돔에서 ‘푸른 산호초’를 부르자 일본에선 ‘고맙다’는 반응이 많았다. 어느 평론가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K팝 멤버가 1980년대 일본의 전성기 시절 노래를 불러줘 세계에 J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무력으로 노략질해서 얻을 수 있는 반응이 아니다.

힘쓰지 않아야 오히려 힘이 있다. 정영선 전시를 처음 소개한 본지 기사에 어느 독자가 온라인 댓글을 달았다. “보이지 않는 처처에 이런 위인들이 있어 이 나라를 지탱했구나. 여의도 3류 씨레기들과 5류 무지랭이 백성들만 보이는 세상이어서 침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