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덴마크 선수 리즈 하텔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승마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첫째, 그는 여자였다. 남자 선수들과 경쟁해 이룩한 업적이다. 둘째,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었다. 말에 오를 때마다 남편 도움을 받아야 했고, 올림픽 시상대에 오를 땐 금메달을 딴 선수가 부축해줬다. 그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도 또다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핵심 가치를 탁월함(excellence), 존중(respect), 그리고 우정(friendship)에 둔다. 여기서 탁월함이란 일상이나 경기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게 공식 설명이다. 사견을 보태자면 실상 그 탁월함이란 운동 경기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투지는 때때로 기적을 만들고 감동을 부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일본 체조 선수 후지모토 슌은 단체전 마루 종목 경기를 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쳤다. 몹시 아팠지만 동료들이 걱정할까 봐, 그래서 팀에 지장을 줄까 봐 알리지 않았다. 의사는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말렸다. 약물 검사 때문에 진통제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남은 링 종목 출전을 강행했다. 연기를 다 끝내고 마지막 동작. 멋지게 공중에서 몸을 뒤튼 뒤 착지했다. 순간 무릎에 극심한 고통이 왔지만 참고 자세를 유지했다. 9.7점. 그는 다리를 절룩이며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그제야 동료들은 후지모토가 어떤 헌신을 했는지 알게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 셈이다. 일본은 그 종목에서 기어코 소련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을 위해 4년간 땀을 흘린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순간 환희 속에 지난 노력을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마라톤에서 탄자니아 선수 존 스티븐 아쿠와리는 19㎞ 지점에서 다른 선수들과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 57명 중 56명이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 관중도 거의 빠져나간 경기장에 그가 기진맥진한 채 모습을 드러내자 남아 있는 관중은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최종 기록은 3시간 25분 27초. 그는 “조국이 5000마일 떨어진 이 먼 곳까지 나를 보낸 건 단지 경기를 시작하라고 한 건 아닐 것”이라면서 “경기를 끝까지 마치고 오는 게 내 사명”이라고 말했다. “최고가 된다는 건 반드시 가장 빠르고, 가장 높고, 가장 강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장애물에 상관없이 한 약속을 지켰다는 걸 의미합니다.”

4년에 한 번밖에 없는 올림픽. 선수들에겐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보자면 더 중요한 건 인생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요트 종목에서 참가한 캐나다 선수 로렌스 르뮤는 2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부산 앞바다 강풍과 거친 파도를 제치고 나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에 빈 요트가 눈에 띄었다. 싱가포르 팀 선수가 바닷속에서 팔을 흔들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파도 탓에 요트가 뒤집혀 물에 빠진 것. 르뮤는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 이 선수를 구조했다. 그러고 나서 경주에 복귀했지만 메달권에서 멀어진 뒤였다. 그는 “항해의 제1 규칙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IOC는 르뮤에게 “스포츠맨십, 자기희생, 용기로 올림픽 이상에 걸맞은 모든 걸 구현했다”면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도 이런 감동과 희망을 품은 수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