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거란이 세운 요와 세 번 싸웠다. 그중 수도 개경이 불탔던 2차 여요 전쟁이 가장 큰 위기였다. 절체절명에서 나라를 구한 장수가 양규였다. 수많은 전공을 세운 뒤 나선 마지막 전투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선 채로 전사했다. 그의 희생 덕에 고려는 기사회생했다. 여요 전쟁 이후 고려는 200년 넘는 장기 평화를 누렸다. 하지만 평화에는 기강을 허무는 독성이 내재해 있다. 그 독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에 평화를 가져다준 군인이었다. 전몰장병과 그 유족을 숭모와 보훈의 예로 대우하던 나라가 군인을 멸시하고 희롱하는 나라로 타락했다. 그러다가 맞은 것이 무신의 난이었다.
무신의 난으로 쫓겨난 의종은 놀기 좋아하는 왕이었다. 개경 주변 30여 곳에 놀이터를 짓고 싸울 일 없어진 장군들을 광대놀음에 동원했다. 나라 지키려고 연마한 무예를 한낱 왕과 문신의 볼거리로 삼았다. 놀이판의 최고 가치는 재미다. 대련을 하던 장군 하나가 밀리는 것을 본 어느 문신이 달려들어 뺨을 때리자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그날 밤 무신의 난이 발발했다. 난리 통에 죽은 문신 중에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도 있었다. 무신의 난 여러 해 전, 정중부 장군의 수염에 재미로 불을 붙였던 자다. 장군들은 평화로운 고려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잃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나라 지키는 이들에 대한 존중을 잃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휴전 70년의 평화가 군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서인가. 어제 아침 출근하다가 동네 네거리에 채수근 해병 1주기를 맞아 민주당 쪽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봤다.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채 해병의 죽음은 안타까운 비극이다. 사고 책임자를 밝혀 엄중히 문책하는 것에 누가 반대하겠나. 그러나 한편으론 ‘민주당이 언제부터 군인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당은 북한이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 46용사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 북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때 일부 의원은 반대하기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은 천안함 용사와 연평해전 전사 장병을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이러니 민주당은 책임을 묻는 것도 선택적으로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해 수호의 날은 제쳐놓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인민군과 중공군 전몰자 위령 행사에 간 이도 있다.
6·25 당시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부동 전투는 우리 국군의 큰 자부심이다. 미군 장성들도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장군 생전에 그를 만날 때면 무릎 꿇어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은 그 전투를 패전이라고 깎아내려 군의 명예에 상처를 냈다. 6·25 때 조국 수호 제단에 피를 뿌린 육군사관학교를 향해선 ‘나라 팔아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성장하지 않았나’라고 막말했다.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장군의 뺨을 때리고 수염에 불을 지른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욕을 가했다.
‘핵 가진 북한과 잘 지내겠다’는 인사가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다. 70년 유지된 우리 안보에 중대한 변화가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국회에선 군복 입은 장군들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한다. 일부에선 지난달 채 상병 특검 청문회장에서 치욕을 겪고도 감내한 장군들을 기개 없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군인의 기개와 용기는 적과 싸울 때 발휘하는 것이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기에 국민이 지켜주지 않으면 군은 명예를 지킬 길이 없다. 명예를 잃은 군인에게 누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달라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