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2024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정기총회에 대학 총장들이 참석해 있다. 이날 대교협은 정부에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규제 폐지, 소규모 대학 국가적 정책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대정부 건의문을 전달했다. /뉴스1

서울 강남의 유명 ‘개[犬]치원’에 보내려면 한 달에 100만원이 든다. ‘개치원’으로 불리는 반려견 유치원의 평균 비용은 월 69만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격을 공개한 서울 시내 10곳을 조사한 결과다. 사립대학 월 평균 등록금(61만원)보다 더 비싸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립학교 교육비 현황’ 자료를 발표했다. 대학은 한때 값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시골에서 ‘재산 목록 1호’ 소까지 팔았다고 해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렸다. 그랬던 대학이 ‘개치원’과 비교하는 자료까지 낸 것은 학생 수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15년째 계속되는 대학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급격하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명문 사립대에 갓 부임한 교수는 첫 월급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월급날이 15일이어서 절반만 나온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꼽혔던 사립대 교직원 인기도 크게 떨어졌다. 최근엔 임금이 국립대 교직원에 역전됐다. 공무원 월급은 물가에 따라 오르는데 사립대는 제자리 걸음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I(인공지능),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해외 유명 교수 영입은 꿈도 못 꾼다. 지난달 한양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양학원은 한양증권 매각을 발표했다. 주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파탄된 상황에서 의정 갈등으로 병원 수입까지 줄었기 때문이라고.

대학 등록금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인상률이 6.7%에 달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오자, 교육부는 2009년부터 각 대학에 등록금을 동결하도록 권고했다. 2012년 이후엔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엔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동결을 강제했다. 교육부의 규제 정책은 강력했다. 지난해 대학 등록금은 평균 681만7000원. 2009년(675만8000원)과 비교해 1%도 오르지 않았다. 2009년 1000원 하던 서울 시내 버스비가 지난해 1500원으로 오르는 등 그사이 소비자 물가는 32.8% 증가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등록금은 감소한 셈이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사립대학의 연구비(5336억원·2012년 → 4212억원·2021년), 실험 실습비(2075억원→1501억원), 도서 구입비(1480억원→1117억원) 등이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송기창 숙명여대 명예교수). 지방 대학은 천장에서 물이 새도 수리할 돈도 없고, 전자 저널 구독 아이디를 다른 대학 교수로부터 빌려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대학 교육 여건 악화는 국가 경쟁력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세계 8위 무역국이지만,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국가 경쟁력 순위는 67국 중 20위에 불과하다. 특히 대학 교육 경쟁력은 46위로 크게 뒤처진다.

고등교육법에 “등록금 인상률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법정 상한 규정이 있지만, 교육부가 지원금을 무기로 십수 년째 등록금을 한 푼도 올리지 못하도록 대학 운영을 좌지우지한 결과다. 물론 대학 등록금을 무조건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해외 유명 대학처럼 대학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에만 목매지 않고 대학 스스로 재정 자립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대학 운영을 옥죄고 있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