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을 맡았던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재일교포 3세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역시 재일교포 3세인 부인과 서울에서 늦둥이 아들, 딸을 낳으면서 ‘100년 만의 귀국’이라고 명명했다. 최 회장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초반에 한국을 떠난 지 약 100년 만에 서울에서 증손자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의 그는 자신의 가족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계 일본인을 포함한 전체 재일 교포를 400만명으로 추산한다. 조선(朝鮮)의 국운이 기울자 19세기 말부터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의 자손이 5대, 6대로 이어지면서 한국 피가 흐르는 이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왜 우리 정부는 재미 교포는 260만명이라고 하면서 재일 교포는 40만명으로 축소하느냐”고 반문한다. 재미 교포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일본 전체 인구의 약 3%를 재일 교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부 홈페이지는 각국 현황에서 재일 한국인은 41만명으로, 재미 교포는 262만명으로 이중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재미 교포의 경우 미국 국적을 가진 시민권자도 포함하지만, 재일 교포 기준은 엄격하다. 일본 법무성 기준을 근거로 한국 국적자 41만명만 교포라는 것이다.

기자는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할 때 최 회장처럼 우리 정부의 이중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며 ‘300만~400만 재일교포’ 언급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여기엔 재일교포 규모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대한민국 제1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태평양전쟁’,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를 ‘일본 밀정’이라며 반일을 선동,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지금도 일본 열도 곳곳에는 일제 시대부터의 뿌리 깊은 차별 때문에 자신의 한국 핏줄을 숨기고 사는 이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골프 선수, 가수 등이 한국계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대통령 탄핵도 거침없이 거론하는 힘센 야당이 반일 감정을 고조시킬 때마다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교포들까지 긴장한다.

수년 전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다. 재일 교포를 대표하는 민단(民團) 지방 본부에 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 우익이 혐한 감정을 돌에 담아 표출한 것이다. 민단 중앙회는 이 사건을 보고받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실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 이게 알려지면 곳곳에서 모방 범죄가 일어나면서 교포들이 피해를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 말기인 2021년 민단 본부 신년회에서 중앙본부단장이 “최근의 상황은 재일 교포의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라고 절규한 것은 상징적이다.

같은 시기 일본 국적의 성공한 재일 교포 A씨는 30년 넘게 거래하던 은행으로부터 혐한 공기를 타고 대출 중단을 통보받은 후 기자와 저녁을 같이 하며 울먹였다. 재일 교포 사업가 B씨는 통관 절차가 평소보다 2~3배 이상 늘어나 큰 손해를 보고 있다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국회를 장악한 정치세력이 벌이는 시대착오적인 ‘반일 놀이’는 한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즉시 동해를 건너가면서 증폭돼 일본 열도에서 암약하는 일본 우익을 살찌워 죽창(竹槍)보다 날카롭게 재일 교포들의 가슴에 꽂힌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올해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9월 1일)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은 이런 우익 세력이 그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일 놀이를 즐기며 일본 우익 응원단 노릇을 하기 전에 자신의 뿌리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400만 재일 교포들이 얼마나 가슴 졸이고 사는지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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