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업이 짧으면 2~3개월, 길면 반년 이상 갈 수 있다.”
대형 병원 전공의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지난 2월 20일 김윤(현 민주당 의원)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는 TV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토론을 지켜본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6개월까지 갈까 싶어, 김 교수가 심각성을 강조하느라 과장한다 생각했다. 다음 날 정진행 서울의대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도 “김 교수가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어떤 근거로 그런 충격적 발언을 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런데 전공의 집단 이탈이 7개월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수도권 대형 병원 응급실마저 시간대 또는 진료 과목별로 진료 제한이 일상인 상황에 이르렀다. 의정 갈등이 이렇게 장기화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6월 말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네 달 넘게 의료 공백이 지속될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3~4주면 진정될 거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세계 최장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아직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공립 병원 의사들이 급여 인상, 의사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2011년 약 8개월, 2010년 217일(약 7개월) 파업한 기록이 있다(의료정책연구원 자료).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갈등이 언제 끝날지 전망조차 보이지 않으니 머지않아 세계기록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은 예외적인 나라이고, 서구에서 의사 파업이 길게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영국 의사들이 올해 1월 국가보건서비스(NHS) 75년 역사상 최장 파업을 벌였는데 엿새였다. 그만큼 환자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최후 수단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렇게 사태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것일까. 의사들은 정부가 한꺼번에 무리하게 2000명을 증원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의사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만 외치며 협상다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지난 4월 대통령을 만날 때 “(접점이 없으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말한 것이 이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의사들과 접촉한 정부 관계자는 “의사들은 전공의, 의대 교수, 의사협회, 의학회, 의대생 말이 다 다르고 그 조직마저 또 쪼개져 있어서 어느 말을 듣고 대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했다. 한 중진 의사는 “정부가 들어주기 어려운 정책이 있으면 ‘의료계 단일안을 좀 만들어 오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십중팔구 의견을 모으지 못해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음을 정부가 잘 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 하나하나가 흩어진 점인 모래알 조직인 것이다. 의협이 법정 단체이긴 하지만 개원의 중심인 데다 전공의들의 불신을 받아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의협 회장에 수시로 극단적 성향 인사가 뽑히는 것도 의사들의 민주적 리더십이 취약함을 드러내는 사례일 것이다.
의사들이 이런 식으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자신들은 물론 국민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의사들에게 시급한 일 중 하나는 민주적 리더십을 세우는 일 같다. 의대 교육과정에 관련 과목을 넣거나 필러 시술법 강의하듯 의사들을 상대로 세미나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의사들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파워도 커지고 6개월 넘게 가는 의정 갈등도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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