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에 참석한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법조계에 ‘헌법재판소 10월 마비설’이 퍼지고 있다. 재판관 9명 중 3명이 10월 17일 임기가 끝난다. 재판관은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 등으로 구성되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가는 3명이 모두 국회 선출 인사다. 후임자를 뽑으려면 본회의 표결이 필요한데, 민주당이 이를 지연시켜 헌재를 마비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 의결정족수가 있는 것처럼 헌재에는 심판정족수가 있다. 위헌이든 탄핵이든 사건을 심리하려면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6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번에 퇴임하는 재판관은 이종석 헌재 소장을 포함해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이다. 이 소장은 과거 자유한국당, 이영진 재판관은 바른미래당, 김기영 재판관은 민주당 추천이다. 법에는 국회 몫 재판관 추천 방식에 대해 별도 규정이 없다. 헌재가 처음 생겼을 때는 민정당과 YS의 민주당, DJ의 평민당이 한 자리씩 나눠 가졌다. 그러다 ‘3당 합당’으로 양당 체제가 된 후부터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선출하는 관례가 확립됐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다시 원내 교섭단체가 3개로 늘면서 2018년에 세 당이 1명씩 추천했다. 지금은 교섭단체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둘뿐이다. 여야 1명씩 추천 몫을 제외한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의석수에 따라 자신들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12석의 조국혁신당도 자기들 몫을 주장한다. 현재 여야 대립 구도로는 타협이 쉽지 않다.

민주당이 자신들 맘에 드는 타협안이 나올 때까지 표결을 외면하면 재판관 선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의도에선 민주당이 재판관 3명 선출을 지연시켜 고의로 헌재 기능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장동혁 최고위원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지금 야당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게 상식이지만 민주당은 ‘설마’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적이 많다. 설마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해 일을 못 하게까지 하겠느냐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 민주당 관련 수사 검사 4명도 탄핵을 추진 중이다. MBC를 자기편에 두기 위해 방통위원장을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켰다. 탄핵 소추는 직무 집행 중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가 있어야 하지만 민주당은 이 대표 방탄을 위해 기본 요건도 못 갖춘 탄핵안을 남발하고 있다. 헌재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모두 기각돼 업무에 복귀할 것이지만, 심판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처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민주당이 탄핵하는 족족 공직자의 직무가 정지되고 그들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미아(迷兒)’가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관을 탄핵해 그 부처를 식물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공직자 임명은 대통령이 해도 해임권은 사실상 민주당이 갖는 것이다. 나아가 헌재가 마비된 상태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내고 실제 소추가 이뤄진다면 이는 곧바로 헌정 마비로 이어진다.

민주당이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계엄 준비’나 ‘독도 지우기’ 같은 괴담과 달리 ‘헌재 마비’는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실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만도 없다. 헌재가 실제 멈춰 선 적도 있다. 6년 전 김기영 재판관의 정치 성향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해 국회 몫 재판관 3인 전체에 대한 표결이 35일간 미뤄졌다.

어떤 이유에서든 헌법기관을 공석으로 두는 것은 국회의 직무 유기다. 헌재만큼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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