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체코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공군 1호기에서 내려 환영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차라리 계엄보다 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혁명은 저항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지만 개혁은 설득해서 안고 가야 한다. 의료 개혁, 연금 개혁 그리고 검찰 개혁, 군(軍) 개혁,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본질은 비슷하다. 개혁을 밀어붙이는 추진 주체가 스스로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쩌다 보니 이리 됐겠지만 대통령이 전공별 대입 정원까지 챙기는 자리는 아니다. 장관에게 결정을 위임하고 결과에 책임을 묻는 자리다. 대통령은 장관을 가르치는 자리도 아니다. 보고받고 질문하고 설득당하는 자리다. ‘VIP 격노’ 소문이 자주 들리면 ‘용산’이 개혁의 걸림돌이 됐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야속하다 여기는 순간 국정은 답이 없는 상태에 빠진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언론이 몰라준다.” 이렇게 불평하는 병에 걸리면 치유가 힘들다. 이 병을 앓은 대통령이 여럿이다.

신문사는 전관예우가 없다. 퇴사하면 끝이다. 선배가 정권에 재취업해도 후배는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다. 신문은 숙명처럼 정권에 비판적이다. 독자에게 버림받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덕분에 펜에 힘이 붙는다.

저널리즘은 얽매인 당파가 없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지향한다. 어떤 대통령이 “조중동을 내 편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참 난감하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상식, 공정, 헌법 정신, 이런 가치를 공유하면 긍정 평가했고, 벗어나면 비판했다. ‘좌냐 우냐’는 전혀 별개 문제다.

대통령이 아닌 자들의 강점은 배틀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서 국지전에 치이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바쁜 대통령’은 급가속 페달을 밟기 마련인데 그때 국민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린다. 급가속은 필연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부른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용산 사람들’이 외부인과 밥 먹다가 ‘V 전화’라면서 휴대폰 들고 허둥댈 만큼 대통령이 지시 단계마다 뭔가 확인해야 한다면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V가 조급하다는 증거다. 월권의 뒤탈이 생길 수 있고, 특검의 빌미도 싹튼다.

대통령은 국회에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대정부 질문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면 된다. 국민 앞에 책임을 지려면 직을 걸든지 팔을 자르든지 해야 한다. 국민이 앉힌 자리인데 “못 해 먹겠다”며 내던질 순 없다. 그러나 내치 일부를 총리에게 일임하거나, 야당의 참정 범위를 넓혀주거나, 불소추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게 직을 거는 방식이다.

팔을 자르는 일은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읍참마속의 프로세스를 거친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팔은 가족을 뜻한다. 가족은 “얼굴은 있으나 입은 없는” 퍼스트 레이디가 정점이다. 대통령 부인에겐 ‘조용히 지내는 것’이 본인을 위한 ‘방패’다. 영부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아무도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누구랑 문자하는지, 어디를 다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말은 22년 전 대선 판세를 뒤엎고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온 상황과 지금은 구별해야 한다. 지금은 사랑이 아닌 공정성 문제다. 개혁의 동력이 걸린 문제다.

대통령이 성심을 다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싶었겠지만 현실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정치적 코마에 빠지곤 한다. 대통령의 가장 큰 할 일은 젊은이가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게 공정이다. 나머지는, 적어도 대통령에겐 사소한 일이다. 지금 분란은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 모든 분란을 대통령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 역설을 이해 못 하면 답이 없다.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주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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