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2025학년도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끝났다.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신입생 선발 인원은 4610명으로 지난해보다 1497명 늘었다. 이 가운데 3118명(67.6%)을 수시 모집에서 선발한다. 모집 정원이 크게 늘자, 의대 수시 지원자가 처음으로 7만명을 넘어섰다. 올 2월 시작된 의대 증원 절차가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의대 증원’ 열차는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에 반발해 수련 병원을 떠난 전공의 1만명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들 3명 중 1명은 다른 의료 기관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 동네 병원이다. 나머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학교를 떠난 의대생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학교와 교육 당국은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꾸는 등 각종 시도를 하고 있지만, 10월이 되면 의대생 집단 유급은 더 이상 막기 힘든 상황이 된다. 6년 뒤 의사 수 1500명이 늘어나지만, 당장 내년에 의사 3000명이 없어지는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전 국민의 건강과 목숨을 볼모로 의료 시스템 붕괴를 초래했다’며 비판하지만, 여기엔 의료계 책임도 크다.
지난 8개월 동안 의정 갈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었다. 이제는 감내할 수준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의 잘못만 계속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것을 생각하며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을 위해 ‘의대 증원’이라는 어려운 카드를 꺼냈다. 이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추진 과정에서 좀 더 치밀하고 세밀하게 준비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한 번에 정원 60% 이상을 확대했을 때의 부작용, 전공의 이탈 등 뻔히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당초 취지는 퇴색되고 무능한 정부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
의료계는 이번 사태에서 자기 밥그릇을 위해 환자를 버린, 머리만 좋은 전문가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했다’ 비판하지만, 자초한 측면이 더 크다. 그러나 의료계도 얻은 것이 있다. 전공의들이 주 100시간 이상 일하며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는 열악한 현실을 전 국민이 알게 됐다. 이들의 값싼 노동력과 희생 덕분에 한국이 최고 수준의 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민낯이 드러났다. 의사들이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라고 일컫는 이른바 필수 의료과를 기피하게 만드는 낮은 의료 수가·높은 의료 소송 부담 등에 대해서도 상당수 국민이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 무조건 큰 병원, 대학 병원 응급실부터 찾는 국민들의 의료 소비 형태도 바뀌고 있다.
의료 개혁은 치킨게임이 아니다. 한쪽이 완전히 쓰러지는 게 답이 될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는 더 늦기 전에 타협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모두 말뿐”이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의료계를 끝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전공의도 이제 돌아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모드를 계속 이어가면 완전히 잊힐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진정 국민을 위한다”며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진짜 아기 엄마를 가려낸 탈무드 솔로몬왕처럼, 국민도 끝까지 이기려고 하는 쪽과 진정 국민을 위한 쪽이 누구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