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보스 검사’였다. 따르는 특수통 후배 검사들이 넘쳤다. 검찰총장 시절 정권의 탄압을 받을 때 이들이 똘똘 뭉쳐 보위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하자 이들을 대통령실과 검찰, 정부 요직에 중용했다. 야당은 ‘검사 정권’이라고 했다.
2년이 지나면서 윤 사단은 금이 갔다. ‘윤의 분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가장 먼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문제로 “국민 눈높이”를 거론하고, 김 여사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읽씹’ 했다. 대통령의 격노를 불렀다. 비대위원장에서 쫓겨날 뻔했고 당대표 선거에서도 비토를 받았다. 다음은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었다. 한 대표 못지않은 ‘윤 핵심’이었지만 김 여사 수사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고 김 여사 소환 조사를 주장했다. 수사심의위에도 회부했다. “여론 눈치 보며 자기 정치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일부 수사 라인 검사들은 이 전 총장 편에 섰다. 친윤이 장악한 여당의 일각도 한 대표를 지지했다. 한때 친윤이나 검사 출신도 있었다. 측근과 우군이 등 돌리는 상황에 윤 대통령은 당혹했을 것이다. 검찰 인사로 급한 불은 껐지만 한 대표 당선은 막지 못했다.
사법시험 9수 만에 늦깎이 검사가 된 윤 대통령은 고시생 때부터 후배들을 몰고 다녔다. 검찰에선 부하 검사들과 술자리를 즐겼다. 상명하복의 ‘검사 동일체’는 그의 말을 듣고 따랐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른바 ‘왕초와 똘마니’ 같은 ‘보스 문화’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경청하고 토론해도 설득이 쉽지 않다. 대통령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견을 조율하는 ‘용광로’여야 한다. 그런데 정치 입문 10개월여 만에 대선에서 승리했으니 이런 정치권 생리가 낯설 수밖에 없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이준석 전 대표가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후보 단일화 때부터 껄끄러웠던 안철수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전 대표는 밀어냈고 안 의원은 ‘국정의 적’이라 했다. 지시한 대로 못 하거나 딴소리하는 측근들은 질책받았다. 친구였던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도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대통령 주변 배신자 상당수는 김 여사 문제에서 비롯됐다. 한 대표, 이 전 총장이 그 길을 갔다. 김성한 전 실장 낙마도 순방 과정에서 김 여사 일 처리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성격이 급해도 사리에 닿으면 귀를 연다. 하지만 김 여사 문제는 예외였다. 이른바 ‘노터치’다. 김 여사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 ‘대통령의 격노’를 경험한 인사들이 적잖다. 여론이 나빠지고 주변 우려가 깊어져도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들자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했다. 1호 배신자였다. 김무성 전 대표가 뒤를 이었다. ‘진박(眞朴)’ 아니면 ‘배신’으로 편 가르는 마이너스 정치의 결과는 여권의 분열과 총선 참패, 대통령 탄핵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대선 경선 패배가 내부 배신자 탓이라고 여겨 살생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본인의 인사와 정책 잘못이 더 컸다고 한다.
집안싸움 하고 잘된 정권은 없다. 대통령과 측근·후계자가 갈등을 빚으면 다음 선거는 보나 마나다. 대통령은 내 생각보다 주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자리다. 2·3·4인자를 끌어안는 동시에 경쟁시켜야 대통령이 빛난다. 이들을 적대시하고 쓴소리에 화를 내면 주변에 배신자와 적이 생기게 된다. “배신의 정치 심판”을 외치다 되레 분열과 역풍을 자초했던 박 전 대통령의 데자뷔가 어른거리도록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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