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이유를 한두 가지로는 꼽기 어렵다. 굴종적인 대북(對北)·대중(對中) 관계, 극단적 정치 양극화를 초래한 적폐 청산, 원전 생태계 파괴, 청와대 조직을 동원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서해 공무원 피살 방관, 탈북자 강제 북송….

이런 숱한 악행들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결정적인 요인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정치·이념의 문제이지만 두 사안은 국민들의 상식적인 정의감을 거스르고, 생활과 직결된 문제였다. 이 두 가지가 지금 거의 다 상쇄되고 있다. 조국 사태는 김건희 여사 문제로 덮이고, 부동산은 문 정권 때 못지않게 심각해졌다.

조국 사태는 진보·좌파 정치인과 극성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위선과 내로남불로 진영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가져왔다. 상당수 지자들이 돌아섰다. 김건희 여사 문제가 지금 비슷한 길로 가고 있다.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에서도 돌아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평범한 생활인들까지 돌아서게 만드는 건 부동산과 같은 민생 문제다.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값은 6년 만에 월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간 단위로는 9월 넷째 주까지 27주째 계속 올랐다. 자고 나면 오르니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8월 집계 이래 최대치인 8조9115억원이나 증가했다. 올 1~7월 5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 서울에서 집을 산 30~40대는 2021년 연간 전체의 3.7배에 달했다. ‘영끌 투자’ ‘패닉 바잉’이 문 정권 때보다 오히려 심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관련 정책 수단인 세제와 금융, 주택 공급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부 수장들이 긴장감 있는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나선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실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이 이 문제를 틀어쥐고 챙긴다는 인상을 준 적도 없다. 이들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다. 논란을 불러오긴 했지만 부동산과 가계 부채 문제를 환기시킬 정도로 발언한 사람이 어떻게 금융감독원장일 수가 있나.

부동산 문제만이 아니다. 아우성치는 민생의 현장에 장차관들이 뛰어들어 끈질지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 정부는 주지 못하고 있다. 수백만 자영업 식당주들이 몇 년째 배달비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데도 정책적 해법을 마련하려고 나서는 부처가 없었다. 몇 년 뒤면 수도권 첨단 산업 클러스터에 전력 대란을 초래할지도 모를 송배전망 건설 문제가 수년째 해결되고 있지 않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정부 핵심 부처의 한 고위 인사는 “새 정책을 추진하다가 용산(대통령실)과 코드를 잘못 맞추었거나 삐끗했다간 너무 심하게 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주도적으로 나서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한 고위직 공무원은 최근 퇴직한 선배로부터 “이 정권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도록 너무 두드러지는 일은 가급적 맡지 마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했다. 관료 사회에 ‘이 정권에서 잘나간 공무원’으로 분류되길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정치적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 민생 현안이라도 유능하게 처리해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할 것이다. 20%대 국정 지지율은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관료 조직의 상층부에서부터 자발성이 사라지면 어떤 민생 현안도, 국정 과제도 해결될 리 만무하다. 관료 조직이 책임지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한을 주어야 유능하게 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