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일 구로구청장이 지난 7월 23일 서울 구로구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워라밸 행복산단 지원사업 발대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구청장·군수 4명을 새로 뽑는 재·보궐선거가 열린 16일 또 한 명의 구청장이 사퇴했다.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보유 중인 회사 주식을 백지신탁 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차라리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문 구청장은 1990년대부터 구로구에 ‘문엔지니어링’이라는 정보통신 설비 회사를 설립, 운영해 왔다. 그가 보유한 주식은 4만8000주로 평가액은 170억원으로 알려졌다. 문 구청장은 2022년 국민의힘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회사 회장직은 내려놨지만 주식은 계속 보유했다. 인사혁신처는 작년 3월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 하라고 결정했고, 문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문 구청장은 “명예도 좋지만 평생 가꿔온 회사를 하루아침에 저버릴 수는 없다”며 구청장직을 버렸다. 구로구민 43만명에 대한 봉사 대신 자기 재산 170억원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보궐선거가 내년 4월 또 열린다.

구청장직보다 개인 재산이 중하다면 애초에 왜 선거에 출마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구청장은 소송 과정에서 “본사를 구로구에서 금천구로 이전해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사를 바로 옆 동네로 이전한 것을 백지신탁 회피용 꼼수로 봤을 것이다. 문 구청장은 “내 회사가 구로구와 관련된 일을 전혀 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도 했지만, 이 말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그는 2014년부터 새누리당 구로을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2020년 총선에도 도전했다. 10년 넘게 정치권에 있는 사람이 2005년 도입된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잘 몰랐다는 말을 믿을 수 있나. 고위 공직자는 직무 관련성 있는 주식을 3000만원어치 넘게 보유한 경우, 임명일로부터 두 달 안에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처분해야 한다. 공직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다. 노무현 정부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65억원어치를 매각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백지신탁을 거부하고 중도 사퇴했다. 문 구청장은 일단 당선이 되고 나중에 백지신탁 처분이 내려지면 법원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며 임기를 채우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현 정부에서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백지신탁에 반발해 법원에 소송을 내며 상당 기간 자리를 지켰다.

구청장 보궐선거를 한 번 치르는 데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지난 강서구청장 선거는 40억원이 들었다. 문 구청장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고에 수십억원의 손실을 끼치게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그를 비난하며 “구청장이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취미활동이냐”며 “국민의힘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선을 비롯해 그동안 민주당 잘못으로 다시 치른 선거가 부지기수다. 이번 재·보선도 국민의힘 소속이던 강화·금정은 단체장이 사망해 어쩔 수 없었지만, 민주당 소속이던 곡성은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 치러졌다.

흔히 민주당에는 ‘먹고살기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많고, 국민의힘에는 ‘먹고살 만하니’ 정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돈과 권력을 모두 갖겠다는 사람이 국민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돈이 중하다면 권력을 탐하지 말아야 하고, 권력을 잡으려면 돈에 초연해야 한다. 두 당을 보면 당분간 그런 사람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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