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던 날 저녁 편집국은 숨쉴 틈 없을 만큼 긴박했다. 수상자 발표는 오후 8시, 시내판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눈썹까지 타오르면서 남은 수명 떨어지는 소리가 쿵쿵 들리는 듯했지만, 우리나라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이튿날 신문 4개면에 기록할 수 있었다. 유능하고 민첩한 동료 기자들 덕분이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우리말로 글 쓰는 문학인이 처음으로 노벨상을 탔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에 영구히 기록될 대사건이다. 수상자 개인도 영광이지만 우리말을 함께 쓰는 사람으로서 기뻐하고 축하해 마땅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엔 오랜 세월 선배 문인들이 쌓아온 우리 문학의 온축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한강도 수상자 발표 직후 노벨위원회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어로 책을 읽고,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우리말 문학의 온축은 한반도 남쪽에서만 이뤄졌다. 남쪽 문인들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당초엔 오히려 반대였다. 엘리트 문인은 거의 대부분 북으로 갔다. 홍명희 이태준 임화 오장환 한설야 이용악 박태원 이원조 등 해방 이전부터 문명(文名)을 날리던 문인이 대거 북을 택했다. 북에서 온전한 문학이 사라진 건 세습 독재 전체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남에서 문학이 꽃피운 건 제 마음껏 사유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해방 전후 지식인 다수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더 밝은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독립운동 선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약소민족 독립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감사한 노릇이었다. 미국 프린스턴대 영문학 석사 출신인 김규식(1881~1950)조차도 1922년 1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연단에 올라 “제국주의 세계 열강에 대항하고 있는 위대하고 강력한 힘의 보루인 소비에트 러시아 만세!”를 외쳤다.

독립투쟁 시기부터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려고 노력한 유력 정치인은 이승만(1875~1965)이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거대한 나무로 자라기까지 벼락도 맞고 가지도 잘리고 숱한 상처로 옹이도 생겼지만, 이승만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용기로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튼튼히 심었기에 오늘날 놀라운 성취가 있다. 동유럽부터 한반도 북부까지 확산한 공산화를 막고 침략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바꾸는 나라의 초석을 놓았기에 오늘날 노벨문학상 수상도 있다.

한강은 소설보다 시(詩)로 먼저 문학을 시작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엔 삶의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한강은 담 밑의 하얀 돌을 보고 말한다.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조용한 날들’) 또 ‘난 죽어 있었는데/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아, 죽어서 좋았는데’(‘파란 돌’)라고 쓴다. 작가의 인식이 마뜩잖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냇가의 돌을 보고 천년을 견디는 무한한 생명력만 노래해야 한다면 이미 문학은 성립할 수 없다. 수상 이후 벌어진 어떠한 논란도 지금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년은 광복 80년이 되는 해다. 또 이승만 탄신 150년, 서거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내년 이후 우리말로 사유하는 사람 중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처음 탄생한다면 그 역시 한반도 북쪽이 아니라 남쪽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고집스럽게 자유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킨 이승만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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