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땀을 많이 흘린 선수가 있다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언젠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호기롭게 외친 소감이었다. 다들 “정직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면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운동경기에서 우연이 결과를 지배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걸 운(運·luck)이라 부른다. 운이 좋아 이기는 선수가 드물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 기량을 겨룰 실력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 선수들끼리 맞붙은 경기에선 운이 따라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미식축구에선 ‘성모 마리아(Hail Mary) 패스’라는 표현이 있다. 경기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사실상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던지는 장거리 패스. 이게 성공하면 그런 단어를 붙인다. 말하자면 기적을 바라는 패스인 셈이다.
27일 NFL(미 프로풋볼)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왔다. 워싱턴 커맨더스는 2초를 남기고 시카고 베어스에 12-15로 뒤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하는데 상대편 골문까진 너무 멀고. 커맨더스 쿼터백이 52야드(약 47m) ‘성모 마리아 패스’를 던졌다. 이 공을 잡으려고 공격수 3명과 수비수 5명이 동시에 뛰었다. 다들 손을 뻗었고 누가 잡을지 전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날아간 공이 한 수비수 손에 맞았고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공격 실패로 커맨더스는 패배가 확정될 것 같은 그 순간, 이 공이 뒤에 혼자 서 있던 공격수 손 앞에 떨어졌다. 그대로 터치다운하면서 경기 끝. 18대15로 커맨더스가 기적의 역전승을 일궜다.
이건 실력일까 운일까. ‘성모 마리아의 기적’은 미식축구에서 생각보다 자주 나타난다. 유튜브에서 ‘Hail Mary Pass’를 검색해보라.
투자 전략가 마이클 모부신은 아예 운이 작용하는 승률을 수학적으로 추산했다. 그 결과 NBA(미 프로농구)는 승리 중 12%가 운에 좌우되며, EPL(잉글랜드 프로축구)은 31%, MLB(미 프로야구) 34%, NFL(미식축구) 38%, NHL(북미 프로아이스하키) 53%라고 분석했다.
경제 경영 작가 김영준이 4년 전 쓴 책 ‘멀티 팩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성공은 단순하지 않다. 정말 성공을 원한다면 노력과 열정에 대한 과대평가부터 멈춰야 한다.” 성공은 다양한 요소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노력과 실력(재능), 인적 네크워크, 외모는 물론 운도 중요하다. ‘멀티 팩터’ 부제는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이다.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는 한 마디 더 보탰다. “재능과 노력이란 요소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보상을 차지하기 위한 사회적 경쟁이 너무나 격렬한 우리 시대에 재능과 노력만으로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거의 모든 경우에 상당한 행운이 필요하다.”
앞서 노력의 중요성을 일갈했던 그 선수는 다음 올림픽에선 동메달에 그쳤다. 그다음 올림픽은 나가지도 못했다. 흘린 땀이 전보다 적었던 걸까. 금메달을 딴 뒤 나태해졌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결과가 달랐을 뿐이다.
어떤 선수는 승리하고 난 뒤 “운이 좋았다”고 소회를 밝힌다. 겸손을 가장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아마 본인도 모르는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그 다음 관건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대하는 자세다. 다시 ’멀티 팩터’ 구절을 인용하자면 “실패를 하더라도… 경험을 통해 실력과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런 실패는 그냥 실패가 아니다.… 이럴 때는 다시 기회를 얻기도 쉽다.”
운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진정 깨친다면 우린 좀 더 겸손해질 것이다. 그러면 운이 나쁜 사람, 즉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 더 관대해질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