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미 극동사령부가 전단(삐라)을 처음 뿌린 건 남침 사흘 만인 6월 28일이었다. 일본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서울 상공에 ‘미군과 유엔이 한국을 돕기로 했다’는 전단을 쏟아냈다. 민심 동요를 진정시키려는 심리전이었다. 전쟁 기간 유엔군이 뿌린 전단이 25억장이다. 당시 전 세계 인구에 한 장씩 나눠줄 분량이다.
효과는 컸다. 전단을 보고 귀순한 북한군과 중공군이 셀 수도 없다. 당시 포로 심문에서 투항한 이유로 ‘심리전 영향’이 33%로 ‘전쟁 상황’(38.6%)에 이어 둘째였다는 미국 조사 결과가 있다. 전단에는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내, 사랑하는 여인, 따뜻한 쌀밥 등을 그려 넣은 경우가 많았다. 혹한의 전선에는 “얼어 죽기 전에, 다쳐 죽기 전에, 굶어 죽기 전에 도망하라”고 적어 뿌렸다. 담배를 말아 피울 수 있는 전단도 있었다. 고립된 북한군의 마음을 흔들었다. ‘안전 보장 증명서(Safe Conduct Pass)’라고 인쇄해 투하했더니 그걸 소중히 품고 줄줄이 넘어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투항한 북한군이 개입한 전단의 효과가 가장 확실했다고 한다. 북한군 OO사단과 대치할 때면 그 사단 출신 귀순병이 죽은 전우 이름이나 부대 관련 불만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같이 살자’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아 뿌렸다. 당시 북한은 ‘조국 해방’ 같은 선전전을 펼쳤지만 최전선의 병사는 ‘맞춤형’ 전단에 더 끌렸다. 이런 심리전 덕분에 귀순한 북한 청년들은 목숨을 보전했고 이후 김씨의 노예 생활을 겪지 않아도 됐다.
김정은이 북한군 1만여 명을 러시아로 보냈다. 현재 전황과 러시아의 ‘고기 분쇄기’식 병력 투입을 보면 북한군은 총알받이로 떼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배치됐다는 쿠르스크 지역은 몸을 숨길 데가 없는 평원이다. 겨울이 닥치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히틀러의 독일군처럼 얼어 죽는 청년도 속출할 것이다. 파병 부대가 특수전 훈련을 받은 ‘폭풍군단’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 힘든 부대는 서민의 자식들만 간다”(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고 한다. 북에서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자식은 빠졌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서민 자식들의 피 값으로 호주머니를 채우고 대한민국 안보에 치명적인 무기 기술을 얻고 있다.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나.
국내 탈북민 3만4000여 명 중에는 북한군 경력자가 적지 않다. 폭풍군단 출신도 있다. 왜 전쟁하러 나왔는지도 모를 북한 청년의 마음을 가장 잘 알 것이다. 심리전을 준비하는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다. 살상 무기로 북한군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 살리자는 것이다. 한두 명이 귀순하면 북에 인질로 잡힌 가족들이 걱정되겠지만 수백 명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전이다. 러시아군 귀순도 드론으로 안전 보장과 행동 요령을 적은 전단을 뿌린 뒤 드론을 따라오라고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전단은 6·25 때 ‘안전 보장 증명서’와 유사하다. 러시아와 뿌리가 같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효과적인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 사람은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좌파·진보 세력은 생명 가치가 최우선이라고 해왔다. 생명을 내걸고 반전(反戰)·반핵(反核) 시위를 하곤 했다. 그런데 김정은의 파병에 대해선 형식적으로 철회를 요구하거나 “아직 불분명하다”고 하고 있다. 북핵 개발 때 ‘우리 북한이 그럴 리 없다’고 하던 태도와 똑같다. 북한에 대해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해놓고 ‘우리 민족’인 북한 청년을 살릴 수 있는 우크라이나 심리전 지원을 말하면 “한반도 전쟁 획책”이라고 흥분한다. 김정은이 파병한 생명의 가치는 다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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