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김건희 특검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최근 무척 고무돼 있다. 트럼프 대선 승리에 환호 분위기다. 대선 불복과 개인 비위로 재판받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으니 동병상련인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미 봤던 미·북 정상회담 쇼도 재연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도 바라던 대로였다. 사과의 진정성은 부족했고 김건희 여사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졌다. 김 여사 의혹을 계속 파면 윤 정권 심판 여론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매주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고 ‘김건희 특검법’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국민 시선을 김 여사 의혹에 계속 붙잡아 둘 수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위증 교사 혐의 재판에서도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대표는 날개를 달고 정권 교체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민주당 희망대로 돌아갈까. 윤 대통령 기자회견 후 여러 지인을 만났다. “기대 이하” “D- 낙제점”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이 대표 평가도 민주당 기대와 달랐다. “거긴 D+” “도긴개긴”이라고 했다. 김 여사를 감싸는 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이 싫지만 자기 비리 의혹을 덮으려 마구잡이 공격하고 방탄용 탄핵 공세를 펴는 이 대표도 비호감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장외 집회 흥행도 기대에 못 미친다. ‘박근혜 탄핵 데자뷰’를 예상했지만 참석 인원이나 열기가 그때와 다르다. 국정 혼돈에 대한 우려와 대선 불복 거부감이 적잖다.

이 대표는 요즘 술자리를 되도록 피한다고 한다. 짧게 끝내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가 되려면 24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얘기다. 문제는 깨어있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다. 얼마 전 기업인들을 만났더니 “세상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뀌는데 우리는 ‘김건희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했다. 가장 큰 잘못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이 대표 책임도 크다. 우물 속에서 정쟁의 외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격변하는 세상이 보일 리 없다.

지금 세계는 AI 파도가 몰아치고 반도체·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기술 혁명 시대를 헤쳐나갈 식견이나 정책 비전을 보여준 적이 없다. 트럼프가 K조선과 협력을 요청하고 K방산이 세계로 수출돼도 거꾸로 국회 허가를 받으라며 발목을 잡는다. 원전 수출이나 동해 유전 개발도 훼방 놓기 일쑤다.

이 대표의 상징인 기본 소득은 퍼주기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는다. 여론에 따라 정책을 바꾸고 표 되는 일은 다하지만 국가 대계를 위한 장기 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와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할 외교 전략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고 최신형 괴물 ICBM을 쏴도 “남의 나라 일”이라며 북한과 평화만 앞세운다. 중국의 경제·안보 위협에도 “셰셰” 하면 된다고 한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을 내세우지만 우선 순위는 여전히 ‘방탄용 공세’와 ‘김건희 저격’에 있다. 윤 정부를 뒤엎고 그 혼란의 틈에 정권을 잡는 ‘문재인 시즌2′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능한 ‘D+’가 ‘D-’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만일 윤 정부가 선제적으로 ‘김건희 우물’ 메우기에 나선다면 어찌할 것인가.

김 여사 때리기로 지지층을 결집할 순 있지만 비호감 또한 커질 것이다. 재판 리스크도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이 대표가 AI 혁명과 정세 격변기를 맞아 나라를 이끌 미래 비전과 유능함을 보여준다면 국민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연금·의료 등 국가적 개혁에 앞장서면 반대층의 지지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 지도자 자격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우물에 빠져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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