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현씨가 2021년 이재명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냉장고 안에 모닝 샌드위치 3종 세트가 들어 있다. 일제 샴푸 등 법카로 살 수 없는 물품들은 여러 부서에서 갹출한 업무 추진비나 출장비로 구매했다. 그의 폭로나 회고록 출간에 대해 이재명 대표는 고소·고발도 판매 금지 신청도 하지 않았다. “법카는 사용 흔적이 남아 있고, 문제 삼으면 본인이 더 불리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지사 비서실에서 일할 때 그는 ‘사모님팀’으로 불렸다. 일과의 90%가 배달이었다. 샌드위치, 과일, 소고기, 초밥 등을 공관 또는 이재명 자택으로 실어 날랐다. 경기도 법인 카드(법카)를 마르고 닳도록 긁었다. 지갑에 ‘카드깡(카드 바꿔치기)’으로 처리해야 할 영수증이 가득 차 있었다. 하루에 두 번 긁어야 할 땐 날짜를 배분했다. 주말엔 개인 카드로 결제하고 평일에 가서 취소한 뒤 법카로 재결제했다.

2021년 말, 이 남자는 용기를 내 이재명 지사 부부의 법카 불법 유용과 불법 의전을 폭로했다. 공익 제보자 A라는 익명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을 상대로 전직 7급 공무원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혹시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금 도둑이 대한민국을 이끌게 될 테니 그냥 덮어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 장차 닥칠 일은 가늠하지 못했다.

이재명은 낙선했지만 정치생명은 끝나지 않았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됐고 당대표로도 선출됐다. 반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익 신고자로 인정받은 A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1978년생 조명현씨. 지난해 가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라는 책을 펴내며 이름과 얼굴을 드러냈지만 그는 지금도 도망자 신세다.

다들 고단하고 사는 게 그냥저냥이라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이재명 주변 인물 5명이 사망했다. 법카 유용 의혹에 대해 경찰 조사를 받은 참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2023년 3월 전형수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은 유서에 억울을 토로했다. “이제는 정치를 그만 내려놓으십시오.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시점에서 가장 위험군에 속한 사람은 조씨였다.

공익 제보자로 산다는 것은 고난과 위협을 무릅쓰는 일이다. 윤지오처럼 억대 후원금을 먹고 해외로 튄 사기꾼은 논외로 하자. 내부 고발자는 새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조씨는 야간 택배 일을 하다 다쳐 그만뒀고, 공황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1년 전 만난 그는 “제보자 A로 살 때는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면 신상이 공개된 지금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느낌”이라고 했다.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냥 추락하는 중이라고. 끝은 보이지 않는다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외쳤다. /뉴시스

다시 365일이 지났다. 이재명 대표는 경기도 법카 등 예산 1억여 원을 사적으로 쓴 혐의로 마침내 재판에 넘겨졌다. 허위의 지출 결의서가 작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모님팀’ 공무원들은 이 대표 부부의 사생활을 전담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광화문 장외 집회에서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며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고 댓글이라도 쓰라”고 외쳤다.

오랜만에 조명현씨와 통화했다. 그는 “(이재명이) 기소돼 다행이라고 하는데 사실 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재판이 열리면 증인으로 나갈 것이다. “저쪽 변호사들과 지지자들이 더 독하게 굴 텐데 나는 각오하고 있지만 아내와 가족이 걱정”이라고 했다. 조명현이 등장하는 기사엔 험악한 댓글이 붙고, 욕설과 함께 18원을 송금하는 사람도 많다. 이 공익 제보자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이 남자는 죄 지은 게 없는데 3년을 숨어 지내고 저 남자는 유죄 판결을 받고도 당당하게 민주주의를 말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은 판사가 이재명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 그 옆에 있던 공무원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는 공익 제보로 누구는 죽음으로. 조명현씨는 “내 무기는 사실과 증거”라고 했다. 승리해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 제보자에겐 그게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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