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시절, 동아시아 외교사를 가르치던 영국인 교수가 “한국인들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라서 식민 지배를 당했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조선 왕조가 개혁에 성공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고 물었다. 국호(國號)만 대한제국으로 바꾸지 말고 개혁에 매진해 서방 자본이 두루 이익을 보는 나라로 만들었다면 독립은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러지 못한 채 청·일, 러·일이 한반도를 두고 연달아 전쟁을 벌이자 정세 안정을 원한 영·미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용인하게 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영국 입장에 서서 일본 편을 드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참고 자료로 제시된 청나라 외교관 리훙장(李鴻章)의 서한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교수의 주장이 꼭 옳아서가 아니라, 조선이 얼마나 국제 정세에 어두웠는지 여실히 드러나서였다.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생각했던 리훙장은 류큐(오키나와)를 병합한 일본이 조선마저 차지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1879년 조선에 서한을 보내 “일본이 겁내는 것은 서양”이라며 “서양의 여러 나라와도 차례로 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견제”하라고 권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목적은 통상을 하자는 것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조선은 “예수교는 오도(吾道)와 다르다”는 등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아편전쟁을 겪어본 청이 서양의 왕래 요구를 “사람의 힘으로는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도, 조선이 오히려 “서양 나라들과 일본도 당신의 위엄 아래에서는 감히 방자하게 놀지 못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145년 전의 이 서한들이 문득 떠오른 것은 계엄과 탄핵 정국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을 구한말에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깥일에 어둡고 국내적 논리에만 매몰된 ‘외눈박이’ 정치인들은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야 어떻게 돌아가든 국내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비상계엄부터 대외 정세를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하지만 군(軍)을 동원해 정당과 언론을 통제하는 순간, 그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 동맹이자 우방인 서방국가들부터 그렇게 봐주질 않는다. 미국 정부는 초기부터 계엄을 “위법한 행동”으로 규정했다. 이를 두고 “바이든을 만나 ‘아메리칸 파이’까지 불렀는데 참 매몰차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윤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 것이다. 바이든이 만든 ‘민주주의 정상 회의’까지 이어받아 개최해 놓고 야당이 아무리 심했든 어떻게 계엄을 선포하냐고 말이다.

‘외눈박이’이긴 한덕수 권한대행과 남은 장관들의 ‘줄탄핵’을 거론하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 그 탄핵된 대통령의 대행까지 탄핵되면 도대체 어떤 나라로 보일까. 미국이 지금 그나마 믿고 있는 사람이 주미 대사 출신의 한 대행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잖아도 미국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외교 노선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미 의회조사국은 최근 보고서에서 야당이 한때 윤 대통령 탄핵 사유로 ‘북·중·러에 대한 적대시’를 꼽았던 것을 명시했다. “윤 대통령은 적극 중국을 비판했는데, 이재명 대표는 이런 접근에 의문을 제기했다”고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뒤에서 웃고 있다’는 말까지 돈다. 트럼프 당선 후 동맹 간 마찰을 예상하고 그 틈을 타서 한국을 끌어당기려 했는데, 잘하면 손 안 대고 코 풀게 생겼다는 것이다. 국내적 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한미 동맹부터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