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대세 추종주의가 강하다. 남들이 소비하는 것, 많이 팔리는 것이라면 덮어놓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 선택에 만족할 때도 있지만 실망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수십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나 1000만명이 본 영화도 때로는 회피하고 싶어진다. 이미 대박 난 상품을 덩달아 읽거나 본다면 내 취향이나 선택권이 훼손되는 것 같아서다.
지금 재미 교포 요리사 에드워드 리(53)를 향한 열광은 그런 의심을 걷어낼 만큼 특별하다. 넷플릭스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준우승을 하고도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남자. 대중은 흑수저(무명 셰프)가 백수저(유명 셰프)를 꺾고 별명 대신 본명을 공개하는 순간을 고대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한미동맹 70주년 국빈 만찬까지 만든 스타 셰프가 “내 한국 이름은 이균입니다” 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될 줄이야.
에드워드 리는 미국 켄터키 식당에서 자신이 판매하는 대표 요리 대신 한국의 맛과 이야기가 담긴 요리로 승부했다. 일대일 미션부터 묵은지와 항정살로 샐러드를 만들었고, 팀전에선 한국 장을 활용한 요리를, 인생 요리 미션에선 썰어 먹는 비빔밥을 보여줬다. ‘무한 요리 지옥’에서 창작한 두부 요리들과 결승전의 떡볶이 디저트까지 모두 한식의 재해석. 주무기를 꺼내지 않고 즉흥으로 대결한 셈이다.
번역 출간된 그의 첫 요리책 ‘스모크&피클스’는 놀랍게도 냄비밥으로 시작한다. “(전기)밥솥은 매일 순종적으로 하얀 김을 내뿜었다. 그 믿음직한 밥솥이 고장 나면 할머니는 냄비에 밥을 짓곤 했다. 늘 똑같은 결과물을 내주는 밥솥과 달리, 냄비밥은 자칫하면 타버릴 수 있었다. 상태는 변덕스러웠고 밥맛 또한 매번 달랐다. 그런데 냄비 바닥에 남은 갈색 누룽지는 바삭바삭했고 거부하기 힘들었다. 불완전함이 선사하는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그의 음식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은 불완전함이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10대 시절 그라피티(언제 지워질지 모르는 담벼락 예술)에 매료됐다는 에드워드 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추출해 내는 본성을 가졌다.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을 ‘비빔 인간’이라 표현했듯이, 그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냄비밥을 떠올려 보라. 폭신한 밥과 바삭한 누룽지의 대조적 질감을.
그가 어릴 적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에 배운 모든 한식을 재현했다. 된장찌개, 깍두기, 장조림, 미역국, 갈비…. 요리는 낯선 땅으로 건너온 할머니에게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국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묵은지 국물을 ‘액체 금(liquid gold)’이라 부르는 에드워드 리는 “한국 재료만 사용해 레시피가 없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내가 요리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했다.
‘퓨전’이라는 단어엔 질색한다. 동양 음식은 서양 음식과 융합돼야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요리 인종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셰프는 음식으로 독창적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레시피에 안주하지 않겠다. 주방에서 30년 일했고 속도를 늦출 만한 나이가 됐지만 나는 계속 나아가고 싶다.” 머나먼 길을 빙빙 돌아온 이 재미 교포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 부족한 영양분이 뭔지 보여준다.
에드워드 리 신드롬이 일으킨 의미 있는 변화는 불완전함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우리가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안전한 (것처럼 광고하는) 공식에 매몰돼 그 길로만 가는지. 대세 추종주의는 얼마나 게으르고 따분한지. 성공을 모방하는 게 실패의 지름길은 아닌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건 안쓰럽지만 더 슬픈 것은 자기가 원한 성공이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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